농사이야기

농사이야기

긴 여름, 많은 생각...

  • 길벗
  • 2018-08-08 14:03:20
  • hit603
  • 220.70.178.179

오늘 아침에 찍은 10월 말, 11월 초에 수확하는 부사(후지) 사과입니다


어제 오후 산양 두 마리가 농장 들어오는 큰 길 입구 근처까지 내려가 길가에 풀을 뜯는 모습입니다

올 여름 더위야 더 이상 말할 나위도 없이 이상 기온이고 그래서 어쩌면
이것이 소위 온난화의 본격적인 전조인지 두렵기도 하고 아무리 더워도
농사꾼은 일을 해야만 하는데 과연 앞으로 농사짓기가 어떻게 될런지...

사과는 해가 좋으니 물만 풍부하다면 큰 걱정은 없겠으나 강한 햇살에
일소병(햇빛에 사과가 화상을 입는 것)이 번지고 야간 열대야까지 더해지면
사과농사도 긴 장마 못지않게 걱정을 해야하는 처지입니다.

올해는 양력 9월 24일이 추석이니 시기적으로는 맞춤한 해이긴 한데
그간의 예로 보면 아무리 인간이 이런저런 경험을 갖고 예측을 해도
알다가도 모르겠는게 농사 작황과 해마다 다른 농산물 가격이라
과연 추석 명절에 맞게 사과를 잘 낼 수 있을지 좀더 두고 보아야 합니다.

사과농사만 지을 때는 이맘 때가 그나마 좀 여유가 있는 시기인데
올해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양계가 있고(이제 5백 마리) 산양 2마리가
있어서 아침 저녁으로 돌봐주어야 합니다. 물론 미니피그 한쌍도 우리 안에
있습니다. 돼지들도 산양처럼 농장에 자유롭게 풀어놨었는데 똥을 마당이며
작업장 앞이며 함부로 저질러 놓아서 어쩔 수 없이 우리에 가둬 놨습니다.

하루가 짧고 여유가 통 없는 생활의 연속입니다.
아마 올해는 이런저런 작업이 많아서 더 그런 것 같은데 며칠 안으로
계란 작업장을 서둘러 지어야 합니다. 대단한 것은 아니고 저장고 앞에
조그맣게 벽을 둘러 치는 것인데 모든 것을 손수 혼자 해야 합니다.

농촌에 와서 살면 그야말로 맥가이버가 되어야 합니다. 다양한 손재주와 기술이
있어야 비싼 인건비를 아낄 수 있습니다. 그러자면 공구가 있어야 하고
공구도 종류별로 다 갖추어야 합니다. 미국 영화에서 보면 그네들이 차고 혹은
별도로 공구실이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우리나라 시골 생활도 못지 않습니다.

나아가 농기계도 엔진만 아니면 웬만한 것은 손수 부속품을 주문해서 갈아야 하고
그러자면 약간의 공간과 장치가 또 필요합니다. 하긴 아주 소규모로 농사를
짓는다면 이런 일이 없겠으나 조금 규모가 되면 더구나 과수원이라면
큰 창고가 필수 입니다. 각종 박스도 쌓아놓을 공간이 있어야 하고 작업장도
따로 마련해야 합니다.

올해 쉰 여섯 살을 넘기고 있습니다. 귀농한지는 올해로 18년째가 되었습니다.
마음 속으로 은퇴 시기를 65세로 나름 잡고 있는데 이제 9년 남았습니다.
그 사이 여직 못한 농장의 세팅이 끝나고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아야 이 농사와 토지를 물려줄 수 있을 것입니다.
지난 18년간 거의 변화 없이 사과농사만 짓고 살아왔는데 이제사 서둘러
이것저것 준비 아닌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농사를 지으면서 농촌에 살면서 육체노등을 하면서 적은 수입을 얻으며
사는 이 생활에 대해 그간 많은 생각을 해왔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 대해
이 시대에 대해 이런 사람 저런 사람들에 대해 그리고 결국 한 인간으로 살아가는 것에
대해 참 많이 생각을 하며 살아왔습니다.

갈수록 인간은 참 작고 옹졸하고 유한하며 그래서 영원한 것을 그리는
피조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 자연 속에서 이 끝없는 시간 속에서
사람은 결국 한 점 미물이라는 생각을 점점 더 하게 됩니다.
소박하게 사는 것, 겸손하게 사는 것, 베풀며 사는 것이 얼마나 참된 삶인가에
대해 자꾸 더 깊이 새겨지는 시간들이었습니다.

지나간 짧은 인생을 돌아보면 아무런 재주도 없이 그저 욕심 하나로만
살아온 저 자신임을 알게 됩니다. 그간 너무 많은 주변 사람들의 사랑과 도움을 받으며
겨우 이제까지 살아나온 것입니다.

자연 속에서 더불어 살고 세상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점점 아무것도 아닌 것(nobody)으로 사는 삶을 바라게 됩니다. 어쩌면 이것이 농사꾼의 숙명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그저 농사는 몸을 움직여야만 하고 또 그래야만 일정한 결과를 얻기
때문입니다. 공부만 하면 도깨비, 일만 하면 소... 이것은 제 두 아들이 다닌 풀무학교의
표어입니다.  

막바지 더위인가 봅니다. 쉬 물러가지 않는 올여름 더위를 겪으며 앞으로 닥칠
알 수 없는 시간에 대해 두려운 마음이 들지만 한편으로는 자연의 순리 앞에
나약할 수 밖에 없는 인간임을 다시금 돌아보게 됩니다.

이곳에 오시는 모든 길벗님들 건강하시길 빕니다.
게시글 공유 URL복사
댓글[2]

열기 닫기

  • 함안김씨 2018-09-03
    이짝은 뭐든 줄여가는데
    아직 그짝은 청년인 듯 늘여가고 있네요. ㅎㅎ

    2015년부터 몸이 망가지며 일이 겁이 나기 시작했지요.
    그때가 쉰 아홉 때입니다.
    아홉 수라는 게 있는 모양입니다. ㅎㅎ

    집에 가금(개. 오리. 거위. 닭)은 처분하기도 하고
    포식자에게 잡혀 먹히기도 하고
    병들어 죽기도 하여 이젠 한 마리도 없습니다.
    내 몸이 겨우니 가금들 거두는 일도 귀찮아졌지요.

    몸 망가지는 일 정말 한 순간이었어요.
    길 선생도 몸 관리 잘해요.
  • 길벗 2018-09-03
    아, 형님.... 제가 너무 무심해서 그런 일이 있는 줄도 모르고...
    어찌됐든 형님이나 저나 건강해야 몸 쓰는 농사를 지을텐데요.
    저도 해마다 조금씩 다른 체력을 느끼기는 합니다.
    함 전화드릴께요~
댓글작성

열기 닫기

댓글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