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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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비, 단비 - 4월의 농사 이야기

  • 길벗
  • 2009-04-22 06:4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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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이틀 내린 단비로 브로콜리가 현재 잘 자라고 있습니다. 올해는 2만 주를 심었습니다. 작년보다 5천 주 더 심은 것인데 남의 밭을 조금 더 빌렸기 때문입니다.


빌린 밭 중에는 이렇게 하우스도 몇동 있습니다. 처음엔 이 하우스에 고추나 애호박 같은 걸 심어보려고도 했으나 결국 비닐을 걷어내고 브로콜리로 다 채웠습니다.

4월 들어 예년에 없던 가뭄과 더위로 걱정을 많이 했었는데 두 번에 걸쳐 때마침 비가
내려주어 현재까지는 농사가 수월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4월 초순부터 때아닌 여름
날씨 같은 고온으로 큰 걱정을 하였었는데 4월15일 하루 \'약비\'가 내렸습니다.
4월 8일 브로콜리를 밭에 정식해놓고는 관수 시설을 한다고 허둥지둥 대던 참이었는데
때맞춰 비가 내려준 것입니다. 이 비는 사과나무에도 말 그대로 약비였습니다.
꽃이 필 무렵 땅에 수분이 충분해야 수정도 잘 되고 모든 것이 순조롭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엊그제부터 연이틀 단비가 충분히 내렸습니다. 우리 동네 분들은 이 비에 맞춰
모자리를 내느라고 바빴습니다. 정말 기다리던 단비였습니다. 강원 남부지역(태백 등)의
극심한 가뭄이 이번 비로 거의 해소가 되었다고 합니다. 저도 덕분에 그간의 일에서
벗어나 이틀을 집에서 쉬었습니다. 오늘부터는 다시 이런저런 일들이 많이도 기다리고
있습니다.

짬짬이 글을 자주 올려야 하는데 몸이 피곤하고 일상이 매일 같다보니 생각 만큼 자주
쓰지 못하고 있습니다. 가끔 제 현실을 돌아보면 제가 이제 무지하고 단순한 농꾼이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세상 일에도 무관심해지고 오로지 제 농사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아주 이기적인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또 요즘은 복잡하고 어려운 일은 생각 자체를 피하게도 되는 것 같습니다.

가끔 이제사 제가 시골에 내려와 농사를 짓는다는 것을 알게 된 지인들도 있습니다.
근자에 알게 된 것인데 사람들이 때로는 오해를 하고 있는 수도 있습니다.
제가 젊은 나이에 귀농을 했다하니 상당히 돈을 가지고 들어와서 좀 폼나게 살고 있지
않나 하는 착각들입니다. 물론 귀농한 이들 중에는 그런 사람들도 있을 줄로 압니다.
집도 별장처럼 근사하게 짓고 마당이며 정원도 예쁘게 가꾸고 사는 이들이 분명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내려올 때나 지금이나 그야말로 가난한 농부의 모습에서
더도 덜도 아닙니다. 소위 농사 지으면서 빚도 그만큼 더 안고 살아가고 있고
농사 규모도 아직 크지 않으며 아직도 자리를 제대로 잡지 못하고 헤매고
살아가고 있다고 하는 것이 정직한 표현일 것입니다.

왜 9년이나 되었는데 아직도 농사로 자립하지 못하고 그러고 있느냐고 하면 할 말이
없습니다. 사과의 불모지에서 그것도 농사 경험이 전무한 사람이 어려운 과수 농사를
붙잡고 씨름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는지는 경험해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습니다.
요즘에는 가끔 이 사과 농사 지은 것을 후회하는 때도 있습니다. 그냥 이곳 사람들이
다 하는 오이나 애호박 농사나 지었으면 지금쯤 현재처럼 어렵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나이 사십 후반이 되니 세월이 쏜 살 같이 흘러감을 실감합니다. 이러다 언젠가
오십 후반이 되어 오늘을 기억하고 있겠지요. 과연 그때는 어떤 모습으로 살게 될런지.
한국에서 살아가는 것은 아마도 지구의 다른 나라에서 사는 것보다 두세배는 더 삶의
밀도가 두껍고 게다가 속도도 빠르지 않겠나 생각해봅니다. 때론 지겹다는 생각도 좀
듭니다. 어서 남은 4년이 지나가기를 고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라고 딱히 희망이
보이는 것도 아닙니다만.

해가 어느새 창문 밖에 환하게 와 있습니다. 이만 쓰고 아침 먹고 밭으로 출근을 해야겠습니다. 또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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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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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아빠 2009-04-24
    귀농을 앞두고 많은것을 생각하게 하시는 말씀들입니다. 감사합니다.
  • 효공 2009-04-25
    안녕하세요? 진해사는 후배 윤창한입니다. 사과농사 잘 짓고 계신데...저는 부럽기만
    합니다. 세상사 어떤 이는 힘들다고 하고 어떤 이는 즐겁다고 부럽다고 하고, 정말
    이율배반적이지요? 저는 세상사는 것이 고통의 연속으로 진행된다는 것을 아주
    어린시절에 체득하다보니 선배님이 무척 행복해 보입니다. 왜냐하면 진정 인생을
    맛보며 살고 계시니까요.또한 옛 선인들이 \'근심과 곤란으로 세상을 살아가라\'고
    했으니까요. 그래야 업신여기고 사치하는 마음을 이길 수 있지않겠습니까?
    힘내세요...지화자~~~
  • 길벗 2009-04-26
    윤창한 후배님, 먼 곳이라 한번 다녀가기가 정말 쉽지 않지요. 농사에 뜻을 두고 산다는 것이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닌 것은 확실한 듯 합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농사가 아니어도 세상에 쉬운 일은 하나도 없는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남이 하는 일은 좀 쉬워보인다고 할까요? 좋은 말씀 감사하고 건강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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