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이야기

농사이야기

종일 밭에서 일하기

  • 길벗
  • 2009-04-02 08:5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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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날이 궂어 어쩔 수 없이 쉬었던 탓에 이제 바빠졌습니다.
어제는 종일 와야리 브로콜리 심을 밭에 가서 이런저런 밭 정리를 하고
올해 새로 얻은 인근의 500평 노지밭에(사진) 퇴비를 살포하고 왔습니다.

집에서 와야리 밭까지는 10km 거리인데 어제는 트랙터를 몰고 가야만 했습니다.
한 시간이 걸렸습니다. 덮개가 없는 차라 아침 8시 25분에 떠나 고개를 두 개 넘어
가야 하는데 옷을 단단히 챙겨입지 못해 아침 한기를 온 몸으로 느꼈습니다.

새로 얻은 밭은 작년에는 원주민이 몇년 째 들깨를 심었던 밭인데 물론 소유자는
서울 사람입니다. 그런데 올해 새로운 임차인을 구한 걸 보면 뭔가 트러블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5년을 계약했는데 임대료도 싸고 큰 길 옆에 붙어서
접근하기도 편하고 해서 계약을 했습니다. 이곳에도 브로콜리를 심고 그 후작으로
단호박을 심으려고 합니다.

지난 1월에 이 밭을 얻었는데 2월에 봉지 퇴비 300포를 갖다 놓았습니다. 그리고 어제
밭 정리를 하고 봉지 퇴비를 살포했는데 모두 5시간이 걸렸습니다. 오전에는 작년에
브로콜리 심었던 밭에 추가로 유박비료를 살포하고 밭정리를 조금 했고 오후에는
새로 얻은 이 밭에 와서 일을 한 것입니다.

그야말로 중간에 10분 휴식도 없이 퇴비 230포를 밭에 일일이 져나르고 또 낫으로
튿어서 밭에 뿌리고 골고루 펼쳤습니다. 꼬박 5시간이 걸렸는데 안쓰던 근육을 움직여서
그런지 온 몸이 쑤시고 담 걸린 것처럼 느낌이 옵니다.

봄 볕은 따갑고, 그러면서도 바람은 아직 차서 이즈음 밖에서 일하면 피부는 타는데
얼굴은 춥고, 일을 하니 등에는 땀이 흐르고 그런 형편입니다. 우리 사는 이 지역은
아직 일 할 철이 아닙니다. 서리가 어떤 해에는 5월 10일에도 내리는 일이 있기 때문에
본격적인 밭 정리 일은 적어도 4월 말이 되어야 하고 밭에 모종을 정식하는 것도 늦서리
걱정이 없는 5월 10일 이후에나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금 이렇게 밭에서 종일 일하는 사람은 이 동네에서 저 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동네(홍천 내촌면 와야리)에서는 제가 작년에 처음으로 브로콜리를
재배했기 때문입니다. 아직 동네 사람들 중에는 브로콜리가 뭔지도 잘 모르는 분들이
많습니다.

브로콜리는 더위를 몹시 피하는 작물이라 이렇게 일찍 심어 날이 덥기 전에 수확을
끝내야 합니다. 이제 4월 초에 심으면 6월 10일~15일에 수확을 할 것 같습니다.
브로콜리는 큰 돈이 되는 작물이 아니기에 이모작을 해야 합니다. 제 사는 이 지역에서는
논이든 밭이든 이모작 하기가 쉽지 않은데 다행히 브로콜리는 이모작을 넉넉히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작년에 후작으로 단호박을 했습니다. 올해도 그럴 계획인데
단호박은 이곳 내촌 농협에서 특화 작목이라 제가 원하면 전량 납품을
받아 줍니다.

어제 밭에서 종일 일 하면서 저도 일본 농부들 처럼 회사원같이 일하고자 마음을
먹었습니다. 과연 잘 될런지는 모르겠습니다만(아마도 어려울 것이라는...).
무슨 얘기인고 하면 일본 농부들은 자기 농사를 \'그림같이\' 짓는다고 합니다.
마치 회사원처럼 아침 먹고 밭에 출근하여 저녁에 퇴근한다고 하는데 일년 내내 자기
농원에서 마치 회사원처럼 붙어 산다는 뜻입니다.

제가 듣기로는 돌아가신 소설가 이청준 선생께서 그렇게 하셨다고 합니다. 전업작가이신
선생은 아침 드시고 건너방 집필실로 출근(?)하시면 점심 드시러 나오고 다시 집필실에
들어가 저녁이 되어야 나오셨다고 합니다. 또 저희 가족과 가까이 지내는 소설가 윤흥길
선생님도 출근까지는 아니어도 청년 시절부터 밤에 글쓰는 버릇이 있으셔서 강단에서
정년 퇴직한 지금도 밤이면 집필실로 들어가 새벽까지 원고를 쓰신다고 합니다.

제가 아직 어줍잖은 농부지만 이곳에서 지내보니 농부가 자유 직업 맞습니다.
그저 일하다가 생각지도 않은 일이 생기면 쟁기 그대로 밭에 두고 횅하니 갔다 오고
이 일 하다가 저 일 하고, 일 하는 중에 사람 오면 그날 오후 일은 종치고 대중없이
이렇게 되는 일이 다반사입니다. 그러니 맨날 일이 밀리고 쫒기고 허둥지둥, 결국 대충
마무리를 하게 됩니다. 좀 심하게 묘사하면 그렇다는 말입니다. 게다가 또 무슨 회의며 모임은 그렇게 많은지
일본 농민들과 다르게 우리는 모이는 일이 많습니다.

이건 농진청에 근무하는 어느 박사에게 들은 얘기인데 \'일본 농민들 밭이나 과원 해놓은 것 보고 와서 그대로 따라 하려다가는 오히려 농사 망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네 사정과 도무지 같지 않아서 그렇다는
것인데 일본인들은 사람들과 이런저런 모임도 별로 없고 오로지 자기 밭에서 일년 내내 붙어 산다고 합니다.
그러니 자기 농원을 그림같이 관리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런 모습에서도 한국과 일본의 민족성이랄까 문화가 보이는 것 같습니다. 사과 재배의 경우 우리는 일본의 기술과 품종을 많이 들여와 배웁니다. 그러다보니 일본에 견학갈 일도
가끔 있는 것 같습니다. 또 가면 아무래도 선진재배기술을 가진 대표적인 농원을 가게
되는데 정말 그림같이 과원을 갖추고 있다고 합니다. 저는 아직 일본 사과농원에는
못가봤고 국내 사과선도농가에는 몇군데 가보았는데 과원 정리며 재배가 그림은 고사하고
정리조차도 제대로 된 곳은 한 곳도 본적이 없습니다. 그래도 사과는 맛있고, 유명하고
기술도 뛰어난 집이라고 합니다.

오늘은 날씨가 좋아 땅이 잘 마를 것 같습니다. 지난 주에 내렸던 폭설과 뒤이은 잦은 비 때문에 아직 밭이 마르질 않아 흙 뒤섞는 작업을 못하고 있습니다. 오늘 하루 더 지내고 나서
모레쯤 로터리(흙과 퇴비를 섞어주는 트랙터 작업)를 칠까 합니다. 그러고 나면 곧바로 비닐을 씌우고 다음 주 수요일에는 브로콜리 정식을 합니다. 아주머니 일곱 분을 이미 맞춰 놨습니다. 그러나 제가 아무리 이렇게 계획을 해놓아도 날씨가 받쳐주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농사는 9할이 하늘, 1할만 사람이 짓는 거라고 하는 모양입니다.

내일은 멀리 대구 사과시험장에서 최경희 박사가 병해충 방제 강의하러 우리 홍천사과연구회에 옵니다. 이번까지 올해만 벌써 세번째 사과교육을 우리 홍천사과연구회 자체로
열고 있습니다. 매스컴에서는 사과 재배 지역이 북상해서 강원도가 최적이 될 것이라는데
과연 앞으로 제 사는 이 홍천에서 그간의 설움을 딛고 볕들 날이 있을런지 기대됩니다.

또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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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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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미영 2009-04-02
    이렇게 글로 읽기만 해도 등에 땀이 나는 것 같고 팔다리가 쑤셔오는 것 같네요.
    그런데도 아들이 이 길을 가겠다고 하면 기꺼이 보내겠다는 맘을 먹고 있는 저는
    세상 물정 모르는 엄마일까요?
  • 길벗 2009-04-03
    재영 어머니, 세상 물정을 잘 모르는 엄마 일수도 있고 아니면 너무나 달관한 엄마 일수도 있다고 봅니다. 직업의 속성은 너무나 넓고 다양해서 어느 한 면만 본다면 아마도 엄마 입장에서는 어느 직업도 추천할 수 없으리라고 봅니다. 농부가 힘들어도 겨울엔 쉬잖아요? 또 육체적으로 힘든거나 정신적으로 스트레스 받는거나 매일반이라는 생각입니다. 다만 요즘 대한민국에서 농사질려면 땅값이 문젠데 그것도 때가 되면 해결되지 않겠나...하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재권이가 좀더 농사에 열심이면 결심이 바로 서겠지요. 아직은 관념일수도 있다고 봅니다만... 여름에 오게 되면 진하게 일도 시키고, 얘기도 많이 나누어보겠습니다.
  • 김미영 2009-04-04
    민이 아버님 말씀을 들으니 뭔가 눈앞이 환해지는 느낌이 듭니다.
    그리고 든든합니다.
    풀무가 좋은 이유 가운데 하나는 친부모 만큼이나 관심과 사랑을 부어주시는
    많은 부모님을 가질 수 있다는 것 같습니다.
  • 백인선 2009-04-05
    바쁘겠지만 언제나 건강하길...바쁠 텐데 고맙다. 덕분에 장례식과 삼우제까지 잘 치렀어.
  • 길벗 2009-04-05
    인선아, 꼭 가뵈어야 할 자리였는데 그만 못갔구나. 몸과 맘 잘 추스리고 잘 지내길 빈다.
  • 황금성 2009-04-07
    종일 밭에서 일하시는 길벗 님 이야기를 생생하게 잘 들었어요. 지난 번 번개같이 오셨다가 바로 가셨는데 다음에는 맘 먹고 길게 만나요. 바쁜 만큼 몸을 잘 돌보시길. 우리 마을 공동텃밭도 올해 밭 정리하고 거름넣고 땅을 살려 내년에나 경작할 거 같아요.
  • 길벗 2009-04-08
    해뜨리 아버님, 잘 계시지요? 아름다운 동네와 좋은 이웃을 둔 곳으로 이사하신 것
    다시한번 축하드립니다. 공동텃밭을 잘 살리면 농사도 무척 재미나고 또 건강한
    먹거리도 풍족히 장만하실 줄 믿습니다. 언제 또 그곳에 가게 될런지 지금으로서는
    아득하나 그러나 혹 또 가게 된다면 진짜 서해안 갯벌 구경을 진하게 하고 싶습니다.
    전 대학 때 원산도 다녀온 게 서해안 여행의 전부라서요(그리고 그날 서천에서 먹었던
    저녁은 강원도 촌놈에게는 정말 진미였습니다). 늘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
  • 성성적적 2009-04-09
    사과꽃이 하얗게 한들거려 놀란 아침!
    (몇해 전에 주신 오얏꽃 같은 사과나무)
    브로콜리 농사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신 요즘,
    곧 사과꽃 피면...사과꽃 따러 가겠습니다.
    언제가 좋을까요!손이 더 필요하면 더 갈수도요.^^
  • 길벗 2009-04-11
    사모님, 요며칠 새벽별 보고 나가서 저녁별 보고 들어옵니다. 아마 여기온 이래 가장 바쁘고
    힘든(몸이) 봄인 것 같습니다. 올해는 일주일 정도 꽃이 일찍 필려나 봅니다.
    사과농부에게는 적화에서 적과까지가 일년 농사 중 가장 중요한 때라서 꽃 따러오신다는
    말씀이 제일 듣기 좋습니다. 따로 연락드리겠습니다. 오랫동안 못뵈었으니 얼굴도 뵐 겸
    해서 오시길 바랍니다.
  • 이양수 2009-04-12
    사과꽃 언제 따나요?
    항상 맛있는 사과만 먹을 줄 알지 사과농사를 어떻게 짓는지는 모릅니다.
    남양주에서 이양수 올림 시간이 맞으면 한번 찾아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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