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 날, 묵은 책들을 한 보따리 다 태워버렸습니다. 고물상에 줄까 하다가 이렇게 태워버리는 것도 좋겠다 싶어 그리 했습니다. 지난 몇 년 간 아이들 가르쳤던 참고서며 문제집이며 또 참고도서 등이 쌓아놓으니 제 키 만큼이나 되었습니다
올해 새로 빌린 밭(하우스)에 줄 거름을 새해 벽두에 농협으로부터 받았습니다. 모두 500포입니다
여기 오시는 여러 길벗님들께 한참이나 때 늦은 새해 인사를 이제야 드립니다.
새해 모든 소망이 이루어지시길 기원합니다.
여느 해와 다르게 지난 연말과 올 새해는 특별한 감회없이 하루하루가 지나갔습니다.
아마도 특별한 불경기와 불안한 여러 징후와 특히 이 정권의 대책없는 많은 짓거리에
한 해가 가고 또 옴에도 불구하고 마음에 아무런 감흥이 없었던 것이 원인인 것 같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이웃에 사시는 우리 김 선생님은 \'또 남 탓이다\'하고 곁에서 혀를 차실런지도 모르겠습니다만,
하긴 남 탓을 하기 이전에 제 자신부터 돌아볼 줄 아는 지혜와 여유가 필요한 시기인 것도 같습니다.
지난 해는 계획했던 여러 농사 일 중 우리 먹을 김장 배추도 못심어 결국은 장모님이
해주신 김장을 갖다 먹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만, 주 농사인 사과 농사에서도 큰 소득을
올리지 못한 채 마감하고 말았습니다. 물론 처음 지어본 무농약 인증 받은 브로콜리와
그 후작으로 지은 단호박 농사가 있었지만 여느 유기재배 농사꾼들의 말을 종합해 본 즉
제가 올린 소득은 그들의 경험에 비추어보면 같은 면적에서 거의 절반에도 못미치는
수준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처음 짓는 본격적인 밭농사, 그것도 무농약 농사가
그리 만만치 않음은 당연지사이겠으나 귀농 8년차에도 여전히 농사로 자립하지 못하는
쓸쓸한 풍경만을 연출한 셈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큰 소득은 처음으로 제법 큰 규모(3천 평)의 밭농사를
본격적으로 경험했다는 점과 재작년 큰 해거리를 겪은 사과 나무가 지난 해까지도
그 여파로 많은 소출을 내주지는 않았지만 이제 안정적인 수세로 돌아서서 올해부터는
제대로 된 나무 관리가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생겼다는 점입니다.
올해로 9년차 농사 생활, 그러나 지난 해까지는 누구 말마따나 조금은 어정쩡한
농사꾼이었습니다만 이제 올해부터는 저도 본격적인 제대로된 농꾼이 되려고
작정하고 나서고 있습니다.
그 첫번째 작업의 일환으로 그간(9년 중 7년간) 매주 2-3일씩 나가던 서울의 재수생
입시학원 강사 노릇을 지난 해 수능시험을 끝으로 접었습니다. 시원섭섭하다는 말이
이같은 경우에 딱 맞는 말임을 실감했습니다. 언제까지나 투잡을 하며 이같이 벌려놓은
농사를 제대로 지을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입니다.
두번째는 올해 조금더 남의 밭을 빌렸습니다. 노지 500평, 하우스 시설 400평입니다.
어찌됐던 와야리에 심어놓은 사과묘목이 본격적으로 수확을 하기 전까지는 농사 규모를
조금더 늘려 몸이 고되더라도 뭐라도 해야 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지난 연말부터 제주도 오재길 선생님을 방문하고, 또 김천의 김성순 선생님 포도밭도
다녀오고 한 것이 다 올해부터 전업농으로 들어서는 저의 농사에 힘을 주기 위한 것도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유기농 1세대에 속하신 이 분들의 살아오신 이야기와 그 신념을
들으며 나약해져가는 제 자신에게 어떤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고보니 연말에 두루 돌아다녔습니다. 우선 원주 부론면에 귀농해 사는 김석일 형을
이번에 알게 된 것도 큰 힘이 되었습니다. 앞으로 제가 농사일부터 사람 사는 일까지
이런저런 일을 편하게 상의해도 좋을만한 분을 가까이에서 만나게 된 것 같습니다.
또 홍천 내면에 사는 기솔이네도 오랫만에 방문해서 올해 농사일을 서로 상의했습니다.
기솔이네도 우리랑 같은 시기에 귀농해온 가족인데 어렵기는 매한가지인 것 같았습니다.
새해 들어서는 멀리 안동에서 사과농사 짓는 유병학 형 집에 잠시 다녀왔습니다. 역시 저희랑 비슷한 시기에 귀농한 분입니다. 초보 농사꾼으로서 함께 고군분투하지만 그 형은
지역이 사과 주산단지인 안동이라 정부 혜택도 많고 또 기술적인 후원도 체계적이어서
저같이 과수 농사의 변방 홍천에서 혼자 좌충우돌하는 모습은 볼 수 없습니다.
형이 지난 여름 안동에서 있었던 사과 교육 강의 녹화한 DVD를 한 장 주어서 집에 와서
보았는데 그간 여러가지 몰랐던 것과 궁금해하던 것을 풀 수 있었습니다.
지난 주에는 홍천 농업기술센터에서 홍천과수연합회 결성을 위한 마지막 모임이 있었습니다. 이곳 홍천에 결성된 과수 농가 연구회는 배, 포도, 복숭아, 사과 등 네 단체가 있는데
저는 지난 해 결성된 사과 연구회의 회장이기도 합니다. 아무튼 3년 전부터 제가 이와같은
과수 연합회 단체 모임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또 공동 브랜드인 \'아시참\' 이름도 제가 짓고
해서 이것을 우리 모두가 함께 사용하자는 주장을 기회있을 때마다 해왔는데 이제 그 결실을 보게 된 것입니다. 모임에서 저는 연합회 총무를 맡게 되었습니다.
내일(13일)은 홍천 관내 과수 농가 교육 모임이 있고, 목요일과 금요일에는 다시 안동으로
사과밭 보러 아는 분 과수원에 방문합니다. 그 다음 주에도 내내 이런저런 교육이 있어서
보고 들으러 다녀야 합니다.
어제 오늘은 아침에 영하 17도를 온도계가 가리키고 있습니다. 뒤늦은 소한 추위가 닥쳐온 것 같습니다. 밭에는 지난 12월 미쳐 다 못뿌린 거름더미가 군데군데 있습니다. 날이 풀리면 바로 해야하는 일입니다. 올 봄에는 다시 사과나무 묘목 200주를 더 심습니다.
그중 100주는 가식을 했다가 내년 봄에 심을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사과나무 심을 밭의
흙기반 조성이 좀 미흡하기 때문입니다. 좀더 고민을 해보아야겠습니다.
늦은 새해 인사를 드리면서 제 얘기를 너무 많이 한 듯 싶습니다.
겨울엔 만물이 쉬는 계절인데 오직 인간만이 여전히 바쁜 듯 합니다. 계획했던 번역도 조금씩 하고 또 겨울에 읽으려고 책을 한보따리 사다 놨는데 미처 들쳐보지도 못한 책이 많습니다. 여기 오시는 길벗님들 뜻 깊은 새해를 맞이하시기를 다시한번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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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런으로 치자면 자연이나 길벗농장이나...우리네는 흉내도 못내지요.
\"天道無親 常與善人\"
하늘의 도는 편애하는 일이 없으며, 언제나 선한 사람에게 베푼다.
기축년에 어울린다 싶어 써 봤습니다.
사과밭 골짜기에 눈이 녹을 즈음 들리겠습니다.
이제 전업농이시니 열심히 하시는 방법뿐인거 잘아시죠.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