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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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농사 이야기(1)

  • 길벗
  • 2008-05-09 21:3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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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올라오는 입구 길이 훤해졌습니다. 이제 축대만 쌓으면 장마가 와도 아무 걱정이 없을 것입니다>


<위 같은 길 재작년 장마 때 패여나간 모습. 이렇게 길이 형편없이 되었어도 당시 이장은 관심도 두지 않았었다. 오죽하면 아랫집 은자 엄마가 분해서 눈물을 다 보였을까. 이제는 다 지나간 일이 되었지만...>

근 한 달 간 글을 올리지 못하고 사진만 몇 장 올렸습니다.
아마도 매일 같이 저희 농원을 들르는 몇몇 분들은 좀 지루하셨을런지도 모르겠습니다.
또는 도대체 뭘 하는지, 글을 올려야 소식을 들을텐데 도통 올리지 않으니
어쩌면 이젠 궁금해하지 않을런지도 모르겠습니다.

브로콜리는 현재 아주 잘 자라고 있습니다.
내일 사진을 찍어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그간 벌레 방제 하느라 식물성 오일을
한차례 쳤고, 그저께는 밤에 비가 온다길래 요소 비료를 고랑에 뿌려주었습니다.
다행히 오후 늦게 곧바로 비가 조금 내려서 비료 준 효과는 제대로 본 것 같습니다.

유기농 인증이 아닌 무농약 인증이라 화학비료를 쳐도 무방하긴 한데 브로콜리가
워낙 질소질 비료를 많이 요구하는 작물이라 하니 앞으로 유기농 인증을 받게 되면
요소 비료 대신 깻묵 액비를 만들어 관주를 해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올해는 예년에 비해 일주일 정도 꽃 피는 시기가 빨랐습니다. 보통 5월 초에 꽃이
피기 시작하여 어버이 날 전후하여 만개기 였는데 올해는 5월 2일이 만개였습니다.
사과꽃 중심화가 70-80% 피면 만개라고 봅니다.

저희집 추석 사과 품종인 \'홍로\'는 워낙 꽃이 많이 피는 풍산성이라 꽃 따는 작업이
일년 농사의 60%를 차지할 만큼 큰 일입니다. 그래서 보통은 꽃이 지고나서 \'적과\'를
하는데 비해 \'홍로\'는 \'적화\'부터 합니다. 그러다보면 자연히 적과로까지 이어지지요.

일찍 적화나 적과를 끝내야 사과나무의 양분이 남아 있는 사과에 몰려 사과가 충실히
크니까 사과 농사 짓는 이들은 이 적화나 적과를 무척 중요하게 여깁니다.
사과 주산단지에 있는 분들이야 숙련된 아주머니들을 수십 명씩 며칠을 두고
고용해서 일을 마치는데 과수 농사의 벽지인 이곳 홍천 서석에서는 사람을 도무지
구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속된 말로 \'죽으나 사나\' 그저 안사람과 저 두 사람이 작업을 하는데 이제는
나무가 제법 커서 7자(210cm) 사다리를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꽃을 따니
일이 생각만큼 진척되질 않습니다.

며칠 전엔 마을 이장님 사모님과 아랫집 은자 엄마 두 분이서 오셔서 하루 종일
함께 꽃을 따주셨는데, 사실은 꽃 따는 것도 그냥 아무거나 따내는 것이 아니라서
평생 처음으로 사과꽃을 따보는 두 분은 일하러 오시는 것을 많이 꺼려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 부부가 일정한 간격으로 미리 적당한 위치에 잡아둔 사과꽃만 골라
가운데 중심화만 놓고 나머지는 적과 가위로 자르는 작업만 하셨습니다.

며칠 더 일해주셨으면 했는데 그 분들도 각자 집안 농사일이 있으니 연이어 며칠씩
일을 해주기가 어렵습니다. 하는 수 없이 새벽 5시쯤 일어나 하루 종일 우리 둘이서
꽃을 따내고 있습니다. 지금은 이미 꽃이 수정이 다 되어 화방이 쌀알만 하게 부풀어
올랐습니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적과라고 해야겠지요.

5월 내내 작업을 해야 겨우 마무리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올해는 윗밭에 심겨진
중생종 부사(히로사키)에도 꽃눈이 제법 와서 그것도 이제부터는 적과를 해야 하는데
홍로에 매달려 있는 관계로 계속 늦어지고 있습니다.

농촌 생활은 단순함 그 자체입니다. 그저 해 뜨면 일어나 밭에 들어가고, 종일 같은 일 하다가 때 되면
새참도 먹고, 그러다 해 질 무렵이면 집으로 들어옵니다.
저녁이면 씻고 TV 앞에 앉아 잠깐 연속극이나 뉴스를 봅니다. 그러다 10시 쯤 되면 잠자리에 듭니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아주 고요하고 평화롭게 느껴지기까지 한데 사실 그 속을 들여다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머리 속은 많은 걱정과 불안으로 사실 그리 편하지 않습니다.
농업이라는 직업 자체가 아마도 태초부터 지금까지 이런 것이 아닐까, 즉 겉보기는
더없이 평화로운데 그 속을 들여다보면 더없이 불안한 직업이라는.....

어쩌면 에덴동산에서 쫓겨나와 지상에서 땅을 파고 땀 흘려 사는 삶이 인간의 생활이
된 이상 유한한 삶을 살아야 하는 인간은 늘 쫒기는 듯한 삶을 사는 것이 숙명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항상 기뻐하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라\'(살전 5:16-18)고 하셨으니
그리 살려고 애를 씁니다.

그러고보니 감사할 일이 두 가지 있었습니다. 하나는 귀농 8년 만에 집으로 올라오는
비포장도로가 입구 70여 미터 정도이긴 하지만 시멘트 포장도로가 되었다는 것과 또 하나는
아랫집 은자 엄마(저는 그냥 형수님이라고 부릅니다만)가 며칠 전 일해주러 오셨는데
일당을 안받고 여름에 오이 딸 때 와서 거들어 달라고 한 것입니다.

첫번째 일이야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이 비만 오면 패여 나가던 흙길이 포장도로가
되었으니 당연히 감사할 일입니다. 작년에 새로 이장이 된 분이 그 직전 분과는 달리
합리적인 분이라 생각지도 않던 길이 이번에 놓여졌습니다. 또 올라오는 길에 연해있는
아랫집 한수 형님(은자 아빠)네 밭이 일부 길에 들어갔는데도 한수 형님이랑 형수가
흔쾌히 허락해주어서 일이 잘 된 것입니다. 다 감사한 일입니다.

두번째 감사한 일은 은자 엄마가 일당을 안받은 그 사실이 아니고, 우리와 \'품앗이\'를
하자고 제안했다는 바로 그 사실 때문입니다. 그간 이곳에 와서 농사라고 지은 지가
8년차가 되었건만 우리가 농사를 제대로 짓고 있다고 생각해본 적은 거의 없습니다.
제 스스로가 그런데 이곳에서 농사로 잔뼈가 굵은 토박이 분들이 보기에야 오죽했겠습니까.

사실 제 하는 일을 자기가 인정하기보다 남이 알아주는 것이 제대로 된 것이 아니겠는가
하는 마음에서 이제야 우리도 한 사람의 농사꾼으로 인정을 받는구나 싶어 고맙고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오이 따는 일이야 첫 해 내려오던 해 철민네 집에서
여름내 했던 일이고 몇년 전에는 우리도 오이농사를 3백 평 지어봐서 그 돌아가는 형편은
대강 알고 있긴 합니다.

농촌에 와보니 이제는 모두들 각자 농기계를 다 장만해서 제 농사는 스스로 짓고
일손이 필요하면 일당으로 사람을 사서 쓰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품앗이나 두레는
그야말로 책에서나 배우는 옛풍습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이게 참 아쉬운 점이었는데, 그래서 멀리는 말고 가장 가까이 사는 은자네랑만이라도
품앗이를 할 수 있으면 참 좋겠다 생각했는데 우리 부부 노동력이야 아직도 아마추어여서
감히 프로 농사꾼들에게 먼저 말을 꺼낼 형편도 못되었던 것입니다.

\'가정의 달\'이자 \'계절의 여왕\'이라고 하는 5월이지만 농촌에서는 가장 바쁜 한 달입니다.
강원도 홍천 서석에서는 이제부터 농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저희집은 아름다운 꽃 속에서 꽃 따는 작업을 하니 이 아니 즐거운 일이겠습니까.

더구나 꽃을 딸 때 여러 종의 벌들이 와서 수정시켜주는 모습을 보면 노동의 수고와
세상 걱정은 다 사라지고 그저 자연 속에 한 미물인 점에서 저나 나나 다 똑같은 존재인
벌들을 보며 그저 한 세상 이렇게 지나가는구나 라고 생각을 합니다.

어서 5월이 가고 6월이 오면 두 시간 거리인 동해안에 잠시 넘어갔다 오고 싶습니다.
가끔 우리가 너무 골짜기에 파묻혀 산다는 괜한 조바심이 들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이곳에 오는 길벗님들, 값싼 미국 소고기는 절대 사먹지 마시고 맛있는 우리 한우
드시길 바랍니다. 아, 한우가 너무 비싸서 못사드신다구요?  맞습니다, 맞고요.
사실 한우 고기값 너무 비쌉니다. 그래서 저는 이명박이가 값싼 미국 소고기 들여올
생각보다 맛있고 안전한 국내 한우값을 어떻게 하면 서민들도 사먹을 수 있도록 적정한
가격으로 유통시킬 수 있을지를 먼저 고민했어야 한다고 봅니다.

저도 소가 11마리나 있는데 요즘 사료값은 6개월 전에 비해 50% 이상 올랐고
소값은 50% 정도 하락하여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그래도 저야 몇 마리
안되니까 그렇지만 소 사육 많이 하는 분들은 정말 애간장이 탈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모두가 \'항상 기뻐하고 감사하며\' 살 수 있기를 기도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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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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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산지기 2008-05-10
    눈 코 뜰 새 없이 바쁘다는 말이 제격일 듯 싶네요. 그래도 감사할 수 있다는 것은 아무나 맛 볼 수 없는 행복임에 틀림없습니다. 소 이야기만 나오면 온 국민이 열이 오르는 상황이라 혈압약이 동날지도...^^ 조류 독감에,광우병에 이래저래 농민의 한숨만 늘어나는 군요. 창조질서를 거스린 인류의 자업자득이겠지만서도 맘이 아픕니다.
  • 길벗 2008-05-11
    목사님도 5월 들어 많이 바쁘시죠? 한솔이는 그간 집에 한번 다녀갔는지 궁금합니다.
    늘 건강하시고 조만간 뵐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 김진웅 2008-05-13
    ㅎㅎ 거긴 벌써 道 닦기 시작하였군요. 여긴 그제부터 들어갔는데...와이리 감꽃이 바글바글한 지...어 휴ㅡ. 온 종일 하늘보며 오 주여! 그래도 그대는 그쪽이잔여 ㅎㅎ. 고생하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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