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이야기

농사이야기

브로콜리를 심고 나서

  • 길벗
  • 2008-04-12 21: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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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랙터 배토기로 골을 켠 후에 관리기로 비닐 피복을 종일 하였습니다. 작업이 보기보단 쉽지 않아 밤에는 오른쪽 어깨죽지가 끊어질듯이 아팠습니다. 아직 농기계 다루는 요령이 부족해서 힘으로만 하려고 한 탓입니다


물 건너 이 선생님과 김 선생님이 귀한 시간을 내어 함께 비닐 흙 덮는 일을 도와 주었습니다

한 주간을 정신없이 보내고 오늘은 토요일(4월 12일)입니다.
귀농 이후 처음 짓는 본격적인 봄 농사에 몸도 마음도 다 지쳤습니다만, 겨우
2천 평 밭농사에 이렇게 호들갑을 떠니 진정한 농부가 되기엔 아직도
가야할 길이 먼 것 같아 부끄럽고 죄스럽습니다.

어제, 오늘 오전까지 1만 5천 주 브로콜리 모종을 밭에 정식했습니다.
계획보다 5일이나 늦은 작업이었습니다. 일하는 아주머니들을 구할 수 없어서, 또
하루 건너 봄비가 오는 탓에 이리 된 것입니다. 계획은 다 사람이 하는데 실제 일은
제가 아니라 하늘이 하는 것을 이번에 또 확실히 깨달았습니다.

먼 곳에서 어렵게 아주머니 여섯 분을 얻어 지난 월요일에 일하기로 약속을 했는데
그만 비가 온다는 예보에 이틀 전에 작업 취소를 하고는 결국 같은 동네 이웃 아주머니들을
일당을 주고 어제 오늘 일을 함께 했습니다. 늘 얼굴을 보고 지내는 가까운 이웃들이라 정말
자신들 일처럼 성의껏 해주셨습니다. 아무튼 일을 마쳤습니다. 다행입니다.

농사는 머리로 안되고 몸으로 되는 것임을 절감하게 되었는데 지난 목요일 멀리
상주에 김칠성 선생 댁으로 사과 교육을 갔을 때도 김 선생님이 몸으로 농사를
밀고 나가야 한다고 말씀 하시는 것에 공감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고보면 세상이 바뀌어 몸보다 머리를 쓰는 것을 강조하는 이 시대에, 1차 산업보다
3차,4차,5차 산업을 중심에 놓으려는 이 시대에 가장 원시적인 방법으로 삶을
이어나간다고 생각하니 남들이 보기에는 어이없는 의견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한편 생각해보면 모든 것이 기계화되고 자동화된 편리한 현재의 세상에서
그래도 몸으로 밀고 나가는 농사야말로 포스트모던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이성적 합리성의 세계를 거부하고자 하는 것이 포스트모더니즘의 한 성격이라고
볼 때 그렇다면 농사야말로 자못 포스트모던한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트랙터를 구입해놓고 사용해보니 심각한 기계치인 나에게도 어떤 호기심은
남아 있었는지 이 기계가 작동하는 것이 아주 신기하게만 여겨졌습니다.
그래서 인터넷에서 트랙터에 관한 글과 사진을 좀 찾아 보았는데 그만 입이 쩍
벌어질 정도로 놀라고 말았습니다.

참으로 어마어마하게 큰 트랙터들이, 무지하게 광활한 들판을 돌풍처럼 이리저리
밭을 갈고 돌아다니는 UCC를 보니 과연 저렇게 수십만 평 농사를 짓지 않고서야
어디서 감히 농사꾼이라고 호를 붙이랴 싶었습니다. 그네들은 씨앗도 사람이 심지
않습니다. 아니 심을 수 없습니다. 트랙터 뒤에 엄청난 크기를 자랑하는 자동 기계를
부착하고서는 씨앗도 심고, 복토까지 다 한번 운행으로 끝냅니다.

위의 사진에서 보다시피 우리네 농사는 그야말로 포스트모던하다 못해 타임머신을
타고 신석기로 돌아간 듯이 보입니다. 그러나 쪼그리고 앉아서(저도 어깨가 아플 정도로
브로콜리 묘를 심고 복토해주고 했습니다만 사진 찍느라고 못나왔습니다) 호미나
모종삽을 들고 일일이 흙을 덮어주고 있는 이 거룩한 노동의 현장에서 기계는 그저
한낱 물건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트랙터 운전도 노동이고 호미 들고 묘를 심는 것도 노동입니다. 저는 기계를 이용한
광작을 무턱대고 비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 필요의 산물이라고나 할까요.
그러나 하여간 이곳 대한민국에서의 우리네 농사는 이렇게 몸이 피곤하고
또 잔손질이 많이 가는 고된 노동의 현장입니다.

이제 브로콜리는 심었지만 잘 키우는 것이 관건입니다. 이리저리 아는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또 먼저 심은 사람네 밭에도 가보고 할 참입니다. 일단 올해는 경험을
쌓아야 하고 그러면서도 어느 정도는 성공(?)을 해야 합니다. 판매도 제가 신경써야
할 부분인데 무농약 인증을 받았기 때문에 농협을 통한 계통 출하가 아니어서
이곳저곳 유통업체를 알아보고 있습니다. 키우는 것도 재주가 있어야 하고 이제는
판매도 요령껏 잘 해야 득을 보는 세상이 왔습니다. 그래서 요즘 농부는 슈퍼맨 쯤은
되어야 제대로 된 농부일지도 모릅니다.

다음 달 중순에는 고추를 3,000주 심기로 되어 있습니다. 이것도 남의 밭 500평을 빌려서
짓는 것인데 풋고추 농사는 시간이 나지 않을 것 같아 모두 고추가루용 고추 품종으로
묘를 맞췄습니다. 작년 연말에 사과 말랭이 한다고 전기 건조기를 사둔 터라 이 기계랑
비닐 하우스 믿고 올 가을엔 무농약 고추가루 생산에도 힘써 볼 계획입니다.
전기 건조기에서 살짝 쪘다가 내서 비닐 하우스에서 햇빛에 말리려고 합니다.
그러니 태양초는 아닙니다. 화건초 정도라고 할까요.

사과 농사는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지난 3월 22일에 석회 유황합제를 쳤고 그 20일 후에
기계유유제를 치려고 했는데, 오늘 오후에 치려던 계획이 바람이 너무 심하게 불어
미루게 되었습니다. 올해는 추석이 빨라 과연 그 시기에 맞춰 우리집 \'홍로\'가 잘
익어줄지 걱정이 됩니다.

집 마당의 진달래가 막 꽃을 피웠습니다. 목련도 봉오리가 벌어지려고 합니다. 나무마다
본격적으로 움이 트고 있습니다. 봄 소식, 농사 소식 또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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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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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진웅 2008-04-15
    브로콜리 이랑이 꼬불꼬불 시골 길 같구먼. 기계 고놈이 알아서 곧장 가는 게 아니지요? ㅎㅎ ㅎ. 2천 평이면 작는 규모가 아니지요. 고생 좀 될 것 같은데..특히 유통이 원활하지 않으며 맘 고생도 이만저만 아닐터..봄 농사 거룩하게 시작했는데 난 걱정이 더 되네...포스트모더니즘도 좋지만 몸 고생, 맘 고생 좀 덜했으면..
  • 길벗 2008-04-15
    형, 오랫만이구려. 형은 아랫녘이니 벌써 농사가 시작되었겠지요? 이곳은 저만 이렇게 수선을 떨었습니다. 브로콜리는 추위에 아주 강해서 지금 심지만 나머지 작물은 이곳에서는 다들 5월 초순이 지나야 밭에 들어갑니다. 몸 고생, 마음 고생도 다 낙이라고 생각하고 올해 농사에 덤벼 봅니다. 건강하시고 올 농사 풍년 이루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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