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월 대보름이 지나고 이제 슬슬 일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우선 과수원의 겨울 큰 일인 전지 작업을 그저께부터 시작했습니다.
지난 주 금요일에는 멀리 의성에서 김재욱 씨 내외가 오셔서 전지를
가르쳐주고 가셨습니다. 이 분은 제가 가입해 있는 \'사과공부방\' 모임의 부회장님인데
30년 가까이 사과 농사를 짓고 있는 베테랑 농부입니다.
사과농사 규모도 커서 만 평 이상을 경작하고 있습니다. 또한 높은 재배 기술을
갖고 있는 분이어서 저로서는 배울 점이 많은 분입니다.
멀리서 하루 낮 다녀가시는 길이라 이쪽저쪽 둘러볼 과원은 널려있고
해서 사진 한 장 남길 생각도 못하고 그만 저녁이 되어 식사를 하시고는
어둠을 달려 집으로 가셨습니다.
요즘 자신의 일도 많고 바쁘신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전정을 다 마스터하지
못한 어리버리 농사꾼 후배를 위해 먼 길을 다녀가주신 그 고마운 마음을
잊지 못할 것입니다. 또 오셔서 사과 전지 뿐만 아니라 여러 덕이 되는 말씀도
내외분께서 많이 해주시고 가셔서 제 안사람과 저는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이렇게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아무런 댓가없이 거져 나눠주는 이런 손길과 마음을
저도 때가 되면 실천하려 합니다. 이제 사과농사 7년차에 접어들고 있습니다만,
워낙 머리가 아둔해서 아직도 세미한 농사의 지혜를 다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는 만큼은 저도 남에게 나눠주고 함께 하려고 마음 먹고 있습니다.
지난 1월 말에 이곳 홍천에도 드디어 \'사과연구모임\'이 발족했습니다.
홍천농업기술센터에서 모인 홍천의 사과재배 농민들은 모두 10명이었습니다.
제가 사과의 오지, 사과의 불모지인 홍천에 7년 전에 기술센터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어거지로 사과를 심은 이후 그 사이 각자 조금씩 심은 것입니다.
규모는 다 소소해서 그리 내세울 것은 없지마는 그래도 이제 이 정도 인원이
모였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시작이 반이고,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니까요.
어쨌든 모임을 결성했으니 이제부터는 저 뿐만 아니라 이 홍천 지역 사과재배 농민들과
함께 하고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그 무엇이 있어야겠기에 우선 통일된 사과박스부터
만들기로 했습니다.
다행히 군청에서 박스 디자인 제작비를 지원하여 준다고 해서 올 가을엔 홍천사과
박스를 만들어 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현재 홍천사과 이름을 뭐라고 할까 고민 중인데
좋은 이름이 생각나질 않습니다. 재작년에 배 박스 제작할 때 제가 지은 <아시참> 브랜드를
사과에도 같이 쓸까도 생각 중입니다.
전지 작업은 참 어렵습니다. 제가 겪어본 바로는 그렇습니다. 작업 자체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나무의 생리를 알고, 그것에 맞추어 내가 만들어가려고 하는 수형을 그려가면서
해야 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결코 하루 아침에 이해가 터득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더구나 초보 농사꾼을 어지럽게 하는 것은 소위 전정 이론이라는 것이 많기도 하거니와
유행도 타고, 또 제대로 된 실습을 하기가 참 어렵다는 점도 복병입니다.
그나마 사과 주산단지에 있는 농민들은 초보라도 이웃 농원에 가서 살다시피 하면서
몇 해 겨울을 나면 아마도 기술 전수가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저같이 오지에 혼자 쳐박혀 사과 농사를 짓는 사람은 아는 이도, 볼 수 있는
과원도, 가볼 기회도 거의 없습니다. 이제껏 살아오면서 독학이란 걸 해본 적이 없는
저로서는 지난 7년이 참으로 고독하고(?) 또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3-4년 전부터는 상주의 김칠성 선생님도 알게 되고, 사과공부방 모임도 알게 되어
그나마 이만큼이라도 왔습니다. 그렇긴해도 여전히 불편하고 또 힘든 건 어찌할 수 없습니다.
사과 오지에서 홀로 사과 농사를 짓는다는 개척자의 정신으로 버텨내고 있습니다.
제 농사 이력에 아마도 올해가 고비가 될 것 같습니다. 올해도 실농하면 더이상은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저 모든 것을 맡기고 저는 저에게 하루하루 짐지워진 일을
해나갈 뿐입니다.
오늘 오후에는 진눈깨비가 왔습니다. 오전에 전지 작업을 하다 오후에는 날씨 때문에
일을 못하게 되어 기술센터에 잠시 다녀왔습니다. 올해도 이런저런 시설 투자를 좀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정말이지 농사가 이렇게 투자가 많이 되고 돈이 계속 드는 사업인 줄은
처음엔 상상도 못했습니다. 기술센터 공무원과 몇마디 나눴는데 그이가 \'요즘 안오르는 게
없이 다 오르는데 오직 농산물 값만 평생 제자리\'라고 하더군요.
9시 뉴스에 2MB 취임식이 나오길래 오락 채널로 돌려 버렸습니다.
안사람은 교회 권사님과 전화를 하고 있었습니다. 권사님이 지난 주일에 안입는
옷을 좀 주신 모양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마 권사님이 제 안사람에게 의견도 물어보지
않고 옷을 주셔서 혹 맘이 상했나 해서 전화를 하신 모양이었습니다.
안사람 전화 받는 것 옆에서 들으면서 농부로 산다는 것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해볼
기회를 가졌습니다. 그리고 반성을 많이 했습니다. 내려온지 7년이나 지났지만
저는 아직도 농부의 \'꼴\'을 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올해부터는 일단 \'외모\'부터
\'농부처럼\'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나 과연 그리 될 수 있을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위에서 말한 권사님이 누군가 하면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인 이루마 씨
어머님입니다. 어제 교회 갔다가 오후에 잠깐 이루마 씨 부모님 댁에 함께 갔었는데
그때 주신 모양입니다. 이번 주나 다음 주 중에 잠시 짬을 내어 그 집 유실수 몇 그루를
전지해주러 가기로 했습니다. 그때는 사진 몇 장 찍어서 이곳에 올리겠습니다.
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