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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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날 아침에 \'철민 아빠\'를 생각하며

  • 길벗
  • 2007-12-05 08:5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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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철민네 집에서. 철민 아빠, 엄마

늦잠을 잔 관계로 7시에 일어나 밖의 온도계를 보니 영하 15도를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올겨울 들어 가장 추운 날 아침입니다.

계획대로라면 오늘은 배농가 작목반원들과 영월로 \'놀이\'를 가야하는
날인데 집안에 일이 있어 멀리 다녀와야 하기 때문에 그만 결석을 해야 합니다.
원래 어제 다녀와야 하는데 어제는 또 서울에서 손님이 오는 바람에
하는 수 없이 하루가 미뤄졌습니다.

내일은 포크레인이 와서 집으로 올라오는 길을 손보기로 한 날이기도 합니다.
지난 여름 장마비로 인해 패인 길을 여직 고치지 못하고 있다가
다늦은 지금에야 장비를 불러(돈을 들여) 편하게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매년 있는 일입니다. 이곳에서 지난 7년간 살면서 매년 여름이면 장마에 길이 패이고
그러다가 가을이면 제 돈을 들여 이렇게 길을 손보면서 살아 왔습니다.

저희 집에 오는 분들마다 길좀 포장하라고 하지만 큰 길에서 400미터나 되는
길을 제 힘으로 포장하기는 힘들고, 마을마다 군에서 지원하는 돈으로 농로
포장을 해주는 사업이 매년 있기는 한데 먼저번 마을 이장은 신경을 전혀
안써주었습니다. 올 초에 새로 마을 이장님으로 선출된 환수 형님 작은 아버님은
좀 관심을 가져주지 않겠나 기대를 해봅니다.

겨울입니다.
강원도 산골짜기는 방송에서 보도하는 기온보다 더 추운 것 같습니다.
철원이 오늘 아침 영하 11도 라는데 저희 집은 영하 15도이니 말입니다.
영하 15도를 가리키고 있는 온도계 사진을 찍으러 밖에 나갔는데
제가 쓰는 조그만 디지털 카메라가 곧바로 얼어버려 초점을 맞추질 못하더니
그만 배터리가 나갔는지 작동이 되질 않아 사진을 못올립니다.

가끔 이곳에 살면서 왜 겨울이 있는지 좀 원망을 하는 때가 있습니다.
물론 다 자연의 이치따라 순응하며 사는 것이 상선이라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그래도 좀 토를 달아보자면 다 먹고 사는 일에 매이게 되서 하는 말입니다.
우선 겨울엔 일을 못합니다. 일을 못하니 당연히 수입도 없고, 그저 집에서
빈둥빈둥 놀아야 합니다. 아랫녘에서는 한 겨울에도 월동 배추가 자라고
또 요즘은 비닐 하우스 시설을 해서 약간 가온을 하면 채소도 재배가 되어
한겨울에도 출하를 하는 모양입니다.

제가 사는 강원도 홍천은 겨울이 이렇게 추우니 아무런 작목도 짓질 못합니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이곳 농민들 가운데 몇몇은 겨울에 \'느타리 버섯\' 농사를
지었습니다. 보통 11월에 버섯 배지 작업을 하면 12월부터 1-2월까지는 느타리를
생산하곤 했습니다. 물론 면세유를 배정받아 기름 때면서 키우는 농사이긴 합니다만
어쨌든 그랬는데 기름값이 장난 아니게 오르고 부터는, 또 느타리 버섯값마저
낮아지고부터는 작년부터는 거의 버섯농사를 포기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곳에 온 첫 해부터 친하게 지내던 \'철민네\'가 결국 이곳을 떠나
이사간지도 한 달이 넘었습니다. 철민네도 겨울이면 느타리 버섯 농사를
지었습니다. 저와 안사람도 가끔 가서 배지 작업할 때는 도와주고 했는데
이제는 그럴 일도 없어지고 만 것입니다.

철민네는 저보다 3년 먼저 이곳에 \'귀농\'을 한 집이었습니다. 아마 저희 홈피에
자주 오시는 길벗님들은 이미 잘 알고 있는 집일 것입니다.
저는 강원도에서 나고 자라다가 대학과 직장생활만 서울서 했지만
철민네는 부부가 다 서울 사람들이라 시골 생활에는 아무래도 좀 문외한이었는데
그래도 용기를 내어 99년도에 이곳으로 귀농을 했던 것입니다.

아마 그 부부의 이야기를 이곳에 다 쓰려면 어쩌면 하루 해가 짧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곳에서 우연히 서로를 알게 되어 가까운 이웃으로, 또 친구로 그간 지내왔습니다.
철민네는 처음엔 오이 농사를 지었는데 중간에 토마토도 했다가 나중엔 남의 땅을
빌려 단호박, 감자 등을 심기도 했고 겨울엔 느타리 버섯 농사도 두 부부가 열심히
지었습니다.

철민 엄마는 참 부지런히도 농사를 지었다고 생각됩니다. 어찌나 열심인지 손목이
탈이 날 정도로 이런저런 농사를 남편따라 잘 했습니다. 그러나 철민 엄마, 아빠가
열심히 농사를 하는 만큼 몸도 아프고 힘들었는데 어찌된 일인지 농사 지은
수입은 기대에 못미쳤던 것 같습니다.

지난 가을 결국 두 사람은 이혼을 했고, 땅과 집을 팔아서 이곳을 뜨고 말았습니다.
그 세세한 속사정을 몇 달간 옆에서 보고 듣고 한 저로서는 그 얘기를 이곳에 다 쓰지
못합니다. 다만 귀농 9년차에 결국 다른 귀농인들처럼 철민네도 끝내 버티지 못하고
이곳을 떴다는 사실이 저를 가슴 아리게 합니다.

철민네는 이곳에 사는 9년 동안 금전적인 손해도 크게 보았습니다. 몇 년 전에는
서울에 가지고 있던 조그만 상가까지 팔아서 이곳에서 어떻게든지 농사로 일어서보려고
했는데 결국 남은 것은 크지 않은 이곳의 농토 뿐이었습니다.
그냥 서울에서 살았더라면 집과 상가는 남았을 지도 모릅니다. 철민 아빠는 전기 기술자
이니 먹고 살기에 부족함이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만 농사에 \'필\'이 꽂혀
어느날 이 궁벽진 시골로 들어온 것이었지요.

다른 사람들처럼 사업이 망해서 온 것도 아니고, 직장을 다니다 명퇴를 하고 갈 곳 없어서
온 것도 아닌 가정이었는데 그만 이렇게 되고 말았습니다.
이혼은 철민 엄마가 강력하게 요구해서 그렇게 된 것인데, 이곳 땅을 판 돈을 거의 전부
애엄마에게 준 모양입니다. 그래서 철민이와 철민 엄마는 서울 어딘가에서 아마 전세를
얻어 사는 것 같고, 철민 엄마는 식당에 일을 나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철민 아빠는 어느 날 훌쩍 떠났는데 천안에서 다시 전기 공사장에 일을
다닐 것이라고만 했었는데 실제 거기로 갔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이가 떠난 후
그간 몇 번 핸드폰으로 전화를 했는데 번호를 바꿔버려 통화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마 그간 이곳에서 알고 지내던 사람들, 혹은 이제까지 자기를 알던 모든 사람들과
단절하고픈 생각인지도 모릅니다.

이 추운 겨울 날 아침, 철민 아빠가 어디서 또 하루를 맞이하고 있을지 걱정이 되고
생각이 나서 제 마음조차 마당의 얼음처럼 차기만 합니다.
자기 먹을 거 별로 잘 챙겨먹지 않는 철민 아빠의 성격을 생각할 때 아마 매일을
라면으로 때우지 않을까 짐작도 되고 또 그이는 옷 입는 것에도 별로 신경을
안쓰는 사람이라 이 추운 날 어찌 살고 있는지 참 보고싶고 걱정이 되고 그렇습니다.

이제 12월입니다. 서울에서라면 모임이 하루 건너 한번씩 있을 분주한 달이기도 합니다.
멀리 떨어져 사는 저에게도 서울에서의 망년회 모임 연락이 몇 건 옵니다.
가 볼 형편이 되질 않아서 참석 못하는 모임도 있고, 꼭 가야하는 자리도 있는 것
같습니다. 연말 서울 밤거리의 풍경이 자연 떠오릅니다. 참 모두들 바쁘게 사는 것이
요즘 현대인의 모습인 것 같습니다.

이곳 시골은 고요합니다. 물론 이곳도 읍내에 나가면 좀 번잡하지만 그저 집 안에
쳐박혀 있으면 그야말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통 알 수 없습니다.
이렇게 조용한 곳을 좋아하고 또 혼자 있기를 좋아하던 철민 아빠였는데
다시 도시로 나가 사람들 사이에 섞여 살게 되었으니 제 마음이 많이 아픕니다.

시골에 젊은이가 들어와 살기가 이렇게 힘든가, 겨우 세 사람인 한 가족이 살기에도
이렇게 어려운가 하는 자괴감이 이 아침, 남의 일 같지 않게 마음에 무겁게
와 닿습니다.

\'철민 아빠, 가끔 우리 홈피에 들어왔보곤 했는데 객지에 나가서도 혹 이 글 보거든
꼭 연락 좀 주오. 그리고 내게 주고간 관리기용 제초기 값도 내가 보내주어야 하지
않은가 말이야. 완규 형도 궁금해하고 있으니 이번 겨울에도 늘 우리끼리 이곳에서
하던 것처럼 천안이든 서울에서든 올해도 조촐한 우리만의 망년회를 한번 가집시다.
어디에서든 건강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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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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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산지기 2007-12-05
    저도 마음이 아픕니다. 철민이와 우리 아이가 친구였고 괜찮은 친구였기에 아들 녀석도 섭섭해합니다. 기타를 무척이나 좋아했고 잘 쳤었는데...
    이곳의 논밭이 거의 인삼밭으로 바뀌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농촌에서도 수입쌀을 먹을날이
    멀지않았음을 느끼게 됩니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는지...
  • 이명수 2007-12-06
    참 으로 무어라 말하기가 ........
    안타깝고 안타까운 마음만이 이 글을 읽는 내내 저미어옴니다.
    부질없는 말씀이기는 하겠지만 어디서든 몸건강하시고 마음도 함께 늘 건강하시기를
    기도함니다.
    혹 이글을 보시게 된다면 텃골의 송년회는 꼭 하시게 되길 진심으로 바람니다
  • 김진웅 2007-12-17
    아내 안양가고 없는 방에 홀로 이 글 보고 있노라니, 참... 가슴이 먹먹해지네요.
    시골 삶이란 여자들에겐 참 불편하고 성가시지요. 제 아내도 마찬가지고요.
    철민씨란 분을 알지는 못하지만 너무 착한 사람이란 생각을 가지게 되네요. 그렇다고 이혼한 부인을 나무라고 싶은 생각도 전혀 없고요. 다만 이 시골 삶이 열심히 일한 성실하고 부지런한 사람을 내 몰고 있는 이 현실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언 땅에 지을 수 없는 농사에 미련 갖지 마시고
    마음 밭 부지런히 갈아 글 수확도 좀 거두시길!!
  • 길벗 2007-12-17
    댓글을 늦게 올립니다. 철민 아빠는 아직 연락이 없습니다.
    그저 어디서든 건강히 잘 지내기를, 언젠가는 꼭 만나기만을 기도하고 있습니다.
    진웅 형, 겨울에는 좀 쉬시는지요. 형님 농사 짓는 일을 생각하면 그만 제가
    부끄러워지기도 하고 정신을 차리게도 되고 그렇습니다.
    저야 워낙 건달 농사이다시피 하니까요....
  • 김진웅 2007-12-18
    건달농이라..사실 그게 오래가지요. 겨울엔 시나브로 감나무 가지치기에 껍질 벗기며 여유롭게 지내려 하오. 사실 올 겨울 제주도 돈벌이하려 가려 했지만, 여의치 않아 그냥 집안 일만 하기로 했어요. 마음이 많이 여유로와졌다니 하느님은 시련을 그냥 의미없이 주는 것 같지는 않지요?
  • 우리아빠 2009-04-29
    마음으로 울어 봅니다.
    귀농을 하려는 사람의 입장으로...

    하나님께 구하고 또 구하는 길에 대한 대답을 꼭 듣고 싶습니다만...어렵네요.

    철민아빠와 행복하게 다시 만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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