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이야기

농사이야기

8월에 다시 쓰는 농사이야기

  • 길벗
  • 2007-08-07 11:0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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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농약 단호박이 주렁주렁 열릴 날을 고대하면서


온식구가 김매기에 나섰다

지난 5월 말 이후로 두 달 넘게 홈피에 통 글을 쓰지 못했습니다.
글쓰기는 저의 오랜 습관인데 아마도 이토록 오래 글을 쓰지 못한 것은
처음이 아닌가 합니다.

5월 초순에 사과나무에 꽃이 피지 않는 것을 보고 이만저만 당황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사과나무의 꽃은 곧 열매요, 열매는 올 한 해
저희 집 식구들의 양식이기 때문입니다.

일년 양식이 없다는 것은 곧 굶주림을 의미하는 것이겠지요.
그러나 요즘 우리나라에 어디 기아가 있겠습니까마는 아무튼 일년 농사가
봄에 이미 끝이 났다는 것은 실망과 더불어 충격이 너무 컸습니다.

농사짓는 이들 가운데는 다 키운 열매가 8월 태풍에 하룻밤 사이에
다 떨어져서 망연자실하는 분도 있고, 병충해가 왔는데 결국은 잡지 못하고
가을이 오기도 전에 농사를 포기하시는 분도 있습니다.

저야 경험 없고, 또 이곳이 과수 주산단지가 아닌 바람에 주위에 제 과원을 보고
충고해줄 이도 없고 하니 이런 아픈 경험을 겪게 되는데요 그러나 수십년 농사 지은
베테랑들도 때로 엎어지는 것을 보면 정말 농사가 반은 사람이 짓고, 반은 하늘이
도와주시는 힘으로 이어간다고 생각됩니다.

제가 사는 이곳 홍천 서석은 여름 농사로 오이와 애호박 그리고 고추가 주작물입니다만,
오이와 고추가 7월 초반에 잠깐 값이 좋다가 그만 곧두박질 쳤다고 하는데, 특히 고추는
요즘 10kg 한 박스에 6~7천원 한다고 합니다. 제가 귀농하던 7년 전 여름 이맘 때에도
고추값이 형편없었는데 그때도 한 박스에 6~7천원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도 이 가격이면
아예 고추 안따고 내버려둔다고 했습니다. 따는 인건비도 안나온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지난 7년 사이에 물가가 얼마나 올랐습니까?  

이래서 농촌이 어렵다는 말이 나올 수 밖에 없습니다. 방송이나 신문에서는 맨날 성공한
농촌의 모습이나 그 사례만 찾아서 보여주니까 도시에 사는 사람들 가운데는 지금도
여전히 귀농을 꿈꾸는 사람들이 많은 모양입니다. 꼭 그래서라고 보는 것도 무리가
있겠습니다만 어쨌든 저도 그랬지만 농촌에서 살고 싶어하는 도시민들이 농촌에 와서
실패하는 것에 대해서는 별로 아는 것이 없는 듯 합니다.

지난 주말 저녁에 KBS TV \'6시 내고향\' 작가라는 분이 전화를 해오셨습니다. 그 프로에
귀농자를 소개하는 코너가 있는데 저희 농원을 소개하고 싶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저는 그 작가 분에게 메일로 저의 요즘 근황을 적어 보냈는데 요지는 귀농자의 어려움에
대해서 얘기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거의 모든 매체들이 성공 스토리만 다루기 때문입니다. 하긴 그것이 미디어의
속성인지도 모릅니다. 누가 실패한 이야기를 보려고 하겠습니까. 세상엔 성공한 사람도
있지만 그보다 훨씬 더많은 실패자가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면서도 애써 외면합니다.

저의 경우는 아직 성공도 실패도 아닌 여전히 진행중인 상태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우리 마을에 전직 이장이었던 이광훈 씨는 저보고 그만하면 이제 정착에 성공했다고
말하나 저 스스로는 결코 그렇게 생각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곳에 온지 7년이 되었습니다만, 아직도 제 스스로 어떤 판단을 못내린다는 것 이 자체가
농촌 정착의 어려움을 단적으로 말해주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러나 누구나 저에게 묻는 말, \'재미있으세요?\' 라는 질문에는 곧바로 \'네\'라고
말하곤 합니다. 재미마저 없다면 경제적으로 거의 바닥의 생활을 하는 제가 더이상
이곳에 있을 수는 없겠지요.

올해 사과가 어렵게 되어서 급히 단호박과 맷돌호박을 남의 땅에 좀 심었습니다.
그 땅은 3년째 놀던 땅이라 무농약 인증을 받고 두 작물을 심은 것입니다. 3년간이나
풀밭으로 남아있던 땅이라 인증 받기는 쉬웠으나 제초제며 화학농약을 치지 못하기
때문에 김을 매야 했습니다.

마침 방학이라 두 아들이 집에 와 있어서 단호박 밭에 김을 맷습니다. 오후에는 연로하신
아버님까지 동참하셔서 결국 천평을 하루에 대충이나마 끝냈습니다.
제가 예전에도 어떤 글에서 썼지만 모든 농사에 가장 힘든 것이 바로 이 풀과의
싸움입니다. 그래서 제초제가 나왔을 때 농민들은 해방의 감격(?)을 느꼈을런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저는 어떤 일이 있어도(친환경 인증 유무를 떠나서) 제초제 만큼은
쳐서는 안된다고 믿고 있습니다.

어제도 단호박 밭 풀을 매고 있는데 온 식구가 땀을 뻘뻘흘리며 땅에 엎드린 우리
처지가 안됐는지 그 밭 이웃에 사는 지혜 엄마가 미숫가루를 타가지고 왔습니다.
그러고는 제초제 치라고 아우성입니다. 자기네도 옥수수 밭에 제초제 치니까
얼마나 깨끗하고 편한지 모르겠다고, 자기네 먹는 것도 다 제초제 친다고 하면서
말입니다. 저는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그저 웃고 맙니다. 나름대로는 우리를 생각해서
해주는 말에 뭐라고 하기도 뭐해서 그렇습니다.

남들은 단호박을 벌써 수확한다고 야단인데 우리는 이제 첫꽃이 피었습니다. 이유는
약을 안치려고 늦게 심은 탓입니다. 일찍 심으면 약 안치고는 도저히 안된다고 해서
최대한 늦게 심은 것입니다. 사과 말고 올해 처음 해보는 맷돌호박과 단호박이
어찌 될런지 저도 궁금합니다. 안사람은 과연 열릴까 하는 약간의 의구심도 가져 보는
눈치입니다.

만약에 이 농사마저 올해 제대로 안된다면 저는 그야말로 무능하고 한심한 가장이
되겠습니다. 온 식구 이끌고 이 여름에 땅에 엎드려 흙을 긁었는데 이마저도
노력이 수포로 돌아간다면 정말 할 말이 없을 것입니다.

오랫만에 쓰는 글이라 두서도 없고 길어졌습니다.

제가 이곳에 와서 사귄 귀농인들이 그간 하나둘 다 떠나고 그 가운데 유일하게 남아있던
철민네가 결국은 며칠 전 땅을 정리했습니다.
기억을 해보니 청산목장, 재영이네, 완규 형, 최영진 씨가 모두 내려온지 7~10년 만에
다 떠났습니다. 그 가운데 최영진 씨는 양구로 다시 농사지으러 들어갔으니 조금 더
궁벽진 곳으로 떠난 것이고 나머지 분들은 다시 도시로 돌아간 것입니다.

철민네도 다시 서울로 돌아갈 것 같습니다. 이제 이곳에 내려와서 가깝게 지냈던
이웃들이 모두 떠나간 것입니다. 그만큼 농사로 생계를 이어간다는 것이 어렵다는
반증이겠지요. 아이들은 커가고, 돈 들어갈 곳은 많고, 농사는 뜻대로 안되고, 몸은
자꾸 아프고.... 아마 이런 것들이 귀농인들이 겪는 일반적인 어려움일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 제 나름의 생각과 경험을 올려보도록 하겠습니다.

제 홈피에 오는 모든 길벗님들이 이 여름 건강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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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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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인선 2007-08-07
    안 그래도 한참 동안 글이 없어서 비 때문에 바쁜가보다 했어. 나도 뒤늦게 자리 잡으려니 힘드네...아무쪼록 건강 또 건강!!
  • 동산지기 2007-08-08
    이 세상에서 가장 질긴 것이 풀임에 분명 틀림이 없다고 확신합니다.
    작년에 500여평의 땅에 산에 가서 어린 소나무들를 캐다가 심었었는데
    풀과의 끈질긴 싸움을 했었습니다. 사이사이 검은 비닐로 땅바닥에 도배도
    해보고 뽑기도 해보고...결국 졌죠^^
    올해는 걍 풀밭으로 두기로 했습니다. 소나무 뽑아내고 자연산 풀밭으로...
    민이 아빠의 살아가는 모습이 아름답지만 현실의 고민도 크리라 생각됩니다.
    그래도 민이 아빠만큼은 승리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 김칠성 2007-08-08
    오랜만입니다.
    저희도 단호박을 재배 했었는데 (가을에 일 할 때 호박죽해서 참으로 먹기위해)
    단호박은 다비성 식물이기 때문에 착과 후에 비료 성분이 떨어지면 흰가루병이 발생하여 수확량을 좌우합니다.그래서 우린 착과 후에 보르도액을 606한봉에 액상 2봉과 요소 ,마그네슘을 1Kg씩 혼용하여 두세번 살포했었습니다.참고 하시어 가을에 많은 결실 하시길 기원합니다.
  • 길벗 2007-08-08
    댓글 주신 세 분께 감사 말씀드립니다. 제 살아가는 모습과 글이 공허한 메아리가
    아닌 것 같아서 우선 기쁘고 반가웠습니다. 인선아, 지칠줄 모르는 너의 정열과 왕체력에
    나도 건투를 빈다. 건강하기를... 동산지기님, 풀과의 전쟁에서 이기는 법은 아마도 없는
    것 같습니다. 그저 적당히 공존하려고 합니다. 김칠성 회장님, 지난 6월 교육장에서 뵙고는
    오랫동안 연락도 못드리고 이렇게 삽니다. 말씀 참고하고 꼭 그대로 실천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김진웅 2007-08-08
    점이 모여 선이 되듯, 인생도 하루가 쌓여 이뤄지는 것이라 과정을 강조하지만, 농사꾼에겐 참...눈물나는 일이지요. 그래도 과정속에 즐거움이라도 찾아야 살아갈 이유가 있겠지요.
    올 해 쌀 농사 두 배로 짓고 있으니 굶지는 않도록 해 드릴께. ㅎㅎ
    그리고 호박농사는 김칠성님 말처럼 수시로 거름을 줘야하고, 풀을 잡아야 꽃이 수정이 되어 열린 호박도 잘 떨어지지 않는다 합니다. 꽃이 피고 열매가 맺기 시작하면 인산, 칼슘을
    엽면 살포를 함 해봐요. 올 해 자연농업 교육에서 인산 칼슘이 알곡을 튼실히 하는데 꼭 필요하다해서 오이나 가지, 박 따위에 뿌려보는데 효과가 있는 것 같아요. 그저 살아있음에 감사하며...곧 가을이 다가오리니.
  • 정명석 2007-08-08
    반가와요
    완규 동창 부평사는 친구입니다 오랜만에 인사합니다 반갑습니다 매번 뎃글 올리려했는데 이제사 올리네요 작년 사과 잘 먹었는데 올해는................
    하여간 오랜만에글 잘읽었읍니다 항상 좋은일만 있으시길,,,,,,
  • 길벗 2007-08-08
    진웅 형, 저는 형 까페에 가끔 가서 눈요기만 하고 오는데 형은 소식을 주셨습니다. 그간 유기농 쌀 농사에 몸살이 나고 몸까지 상하신 분이 어쩐 일로 올해는 더 짓는데유?? 다 저 먹여 살리실라꼬? ㅎㅎ 여러 말씀 감사하고 형수님께도 안부 전해주세요.
    정명석 님, 작년에 사과 주문하셨던 것 기억하고 있습니다. 완규 형께도 소개 말씀 들었구요. 소식 전해주셔서 고맙습니다. 하시는 사업 번창하시기를 기원합니다.
  • 사과꽃 대신에 인심좋은 주모같은 호박꽃이 폈네요!
    농사로 자식들 학교보내고 살기가 어디 쉬운가요.퇴직하고 내려가 취미삼아
    텃밭가꾸는거 하고는 차원이 다른 생존의 문제지요.여태도 잘 이겨내신것처럼
    이 깜깜한 터널같은 올해도 환한 호박꽃이 주렁주렁 열매가 되어 펑 뚫린 가슴을 벌충해 주리라 믿습니다!!
  • 길벗 2007-08-11
    미카엘라보살 님, 매년 여름 홍천에 오셨는데 올해는 아직 못오셨습니다.
    오미자 주가 잘 익어가고 있으니 조만간 원장님과 함께 시간을 내어
    오셨으면 합니다. 물 건너 이.김 선생님들도 기다리고 있습니다.
  • 나동숙 2007-08-17
    올해는 호박을 많이 먹어봐야겠어요~ 좋은 결실 이루시길 바랍니다. 가을에 호박 사러 올께요~
  • 황금성 2007-08-21
    반갑습니다. 이번 방학 때 꼭 민이네 가서 하룻밤 묵으며 기운을 얻을까 했는데 그만, 때를 놓치고 다음으로 기약합니다. 노란 호박꽃을 보고 난 우리 아이들을 떠올렸습니다. 하늘이 내린 생명이니 그 앞에서 겸손하게 일을 하고 열매를 기다리는겁니다. 풀무 학부모 연수에 갔는데 혹 거기서 뵐수 있으려나 했습니다. 흙, 땀, 정성, 사랑이 가득한 길벗농장 식구들, 더위를 잘 넘기시고 건강하세요. 참, 해뜨리가 집에 와서는 말하길, 자기도 전에 현이네 가서 호박을 심었다고 자랑하네요.
  • 길벗 2007-08-21
    나동숙 님, 그간 안녕하셨는지요. 소식 주셔서 고맙습니다.
    해뜨리 아버님, 올 여름 제가 생각을 하면서도 오시라고 전화 못드린 것은 이상하게도 올 여름에 이러저런 일로 집을 비우는 일이 많아 일정을 잡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겨울에는 꼭 한번 강원도에 들러주세요. 그리고 올해 저희 집 단호박은 현이 친구들이 와서 심었습니다. 더운 날 아이들이 고생했지요. 해뜨리도 땀깨나 흘리며 열심히 하였습니다. 겨울에 좋은 결과가 있기를 기대합니다. 참, 오미자 담근 술을 다음주 초에 학교로 보내드릴까 합니다. 그저 맛이나 보세요.
  • 참으로 오래만에 길벗 농장안에 들어왔군요 모두가 하나님 뜻이라 생각하고 두 집사님 힘내세요 늘기도는 하고 있으나 그 뜻이 이루어 지는 날이 꼭 있을 줄로 믿고 의지 하세요 인간의 힘으로 되는 것이 있다면 얼마나 좋겠음 니까 꼭 의지 하고 기도 하세요 이루어 주시는 하나님 이신줄 믿고 의지하세요 집사님의 뜻이 꼭 이루어 질줄로 믿습니다 우리에게 주시는 연단과 인내를 이겨야되는 줄로 믿으세요 마음을 넑게 같고 즐거운 마음으로 승리 할수 있음니다 이제 자주 글을 올릴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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