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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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 쓰는 올 한 해 농사 일

  • 길벗
  • 2006-11-01 12: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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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된장과 토종꿀 주문이 간간이 들어온다. 택배 부칠려고 포장해놓은 된장과 토종꿀 사진


옛날 바가지를 만들려고 심었던 박을 오늘 따서 켜놓았다. 삶아서 속을 파낸 후 말리면 된다

사과 작업이 끝난지 한참 만에 돌아보는 글을 씁니다.
어느새 11월, 아침 저녁으로는 제법 쌀쌀합니다. 앞산의 낙엽송이 노랗게 물들어가고
마당의 복자기도 어느새 빨갗게 물들어갑니다.

가을은 이렇게 지나가고 또 겨울이 오려나봅니다.
이곳에 온지 만 6년, 6년 전 이 시간에는 집을 짓느라 분주했었습니다. 그때는 디카도
없었지만 경황이 없어서 집 짓는 사진을 한 장도 남기질 못했습니다. 좀 아쉽습니다.
매년 가을이 오고 또 가고, 겨울이 오지만 해마다 그 느낌은 다릅니다.
아마도 나이가 하나 둘 먹어가니까 그런가 봅니다.

올 사과농사는 일단 성공적이라고 자평합니다만, 여전히 미흡한 점이 하나 둘이
아닙니다.

올해 좋았던 점은 석회 보르도액을 처음으로 사용했고 병충해 방제 효과가
컸다는 것, 나무들이 아주 건강하게 잘 자라준 것, 봄에 새로 정식한 \'선홍\'이라는 묘목이
잘 활착된 것(100주), 3.5kg 짜리 작은 박스를 제작하여 \'손에 잡히는 사과\'를 하나도
남김없이 인기리에 다 판매한 것 등입니다.

주의하고 또 보완해야 할 점으로는 첫째, 사과 선별 작업을 더 철저히 해야 하는 점(두 분에게서 항의 전화가 왔었습니다. 실수로 흠집이 크게 난 사과가 한 알 섞여 들어간 분과 아예 사과 한 알이 비어서 간 분), 둘째 석회 보르도액을 이용하여 친환경 방제를 한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좀더 사과 껍질의 상태를 미끈하게(좋게) 할 것, 셋째 선물용 사과는 봄부터 따로 나무를 지정해서 봉지를 씌우고 적과를 강하게 해서 대과로 키워 상품성을 높일 것, 넷째 작년 만큼의 맛을 낼 것(이유를 찾아냈고 그래서 내년에는 올해보다 더 맛있는 사과를 생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 다섯째 수확 및 배송 작업 때 일하는 사람을 늘리고 작업 분담을 효율적으로 할 것 등입니다.

이외에도 많이 있지만 이곳에는 대강의 것만 적습니다. 올해는 총 천 박스 정도 수확을 했고 모두 추석 전후해서 팔았습니다. 추석 이후에도 계속 주문 전화가 왔는데 결국 없어서
보내드리지 못하고 내년을 기약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내년에는 2천 박스(올해보다 두 배)를 생산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올해보다 더 노력해야 한다는 뜻이 됩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해가 갈수록 사과 재배 기술은
조금씩 향상 됩니다만 어떻게 보면 더욱 어려워지기도 합니다. 알수록 더 어렵다는 말을
실감합니다. 더 많은 사과 재배 농민들을 만나고 듣고 또 저도 책과 인터넷을 통해 공부를
더해야 할 것입니다.

그외 지난 9월에 따서 현재 항아리에 담아둔 오미자가 있고 또 토종꿀이 있습니다. 오미자는
250kg 정도 수확했고 토종꿀은 한 스무되 남짓 나왔습니다. 토종꿀은 일곱통에서 나온 것이니 적은 양이라고는 하기 어렵습니다. 토종꿀을 함께 따주려고 오셨던 철정 회장님(우리 아시참 배 회원 중 한 분. 이 분은 서른 통 가까이 토종벌을 돌보고 있습니다)은 이렇게 꿀이 잘들은 통은 처음 본다며 마치 본인의 일이라도 된 듯 기뻐하시며 꿀을 따주셨습니다.  

주위 친한 벗들이 요즘 종종 묻습니다. \'그래, 이제 자립이 됐냐\'고.....   하지만 부끄럽게도
저는 올해도 아직 농사만으로 자립을 못했습니다. 6년이나 되었건만, 제가 부족한 것이
많아서 사는 모습이 이렇습니다. 그래도 그동안은 우리 아이들이 어려서 큰 돈이 들어가지
않았는데 이제 큰 아들 현이가 이번에 수능을 치르고 내년엔 대학을 가니 슬슬 몫돈이
들어갈 것 같습니다.

어쨌든 올해까지는 그래도 제가 계획했던대로 이루어져 왔고 그래서 버텨봅니다. 문제는
내년입니다. 내년부터는 진정한 자립의 해, 즉 농사만으로 생계를 꾸려가는 한 해가
되어야 합니다. 살아보니 귀농한 사람들이 왜 90퍼센트는 다시 도시로 돌아가는지,
가야했는지를 점점 절실하게 느끼게 됩니다.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해야 하는 귀농인들은
그래서 농촌에 제대로 정착하려면 한 10년 걸린다는 말이 헛말이 아니었음을 깨닫습니다.

저와 우리 가족을 아껴주고 사랑해주는 주위의 많은 분들 덕분에 그래도 저희는 버텨낸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도시나 농촌이나 힘들기는 매한가지라고 봅니다. 굳이 농촌 생활만
어렵다고 말하는 것은 이기적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엊그제는 작은 외할머니가
돌아가셔서 서울에 다녀왔습니다. 거기서 만난 외사촌 형이 그러더군요. 내년엔 경제가
더 어렵다더라.....  

그럴 때마다 전 이런 말을 합니다. \'전두환 때도 우리가 살아냈는데 뭔들 못살겠어요\'라고요. 정답은 아니지만, 이렇게 위안을 하는 게 이젠 버릇이 됐나 봅니다.

추워집니다. 낙엽이 바람에 떨어지고, 외투깃을 올리게 됩니다. 이 궁벽진 곳에 살면서도
머리 속에는 덕수궁 돌담길도 떠오릅니다. 서울서 제가 오랫동안 살았던 동네인 이대 후문 봉원사 올라가는 길도 생각납니다. 또 을씨년스러운 늦가을 날씨가 되면 청송대 숲도 보고 싶어집니다.

대학 때 가깝게 지내던 원재길 형의 시가 불현듯 생각나서 그의 시집을 책꽂이에서 찾았습니다. 이 가을 분위기와 맞는 것 같아 한 편 올려 봅니다. 오늘 글은 이 시로 마감합니다.



잎 하나 가지에


섣달 매운 바람아
동아줄로 어서 날아와
중력도 시간도 없이
세상을 묶어주게.
벌레들 三季를 갉아먹은 나무에
잎 하나 매달려
경사진 밤을 떨고 있더라.

풍경 속에 외로운 그의 거부는
지쳐 마른 빛이었네.
깊은 목숨으로
멈출 수 없었던 손짓.

입도 가슴도 없어라.
꿈도 사랑도 없어라.
落下로 잠시 되살아날 이파리
그리곤 잊어지리.
병들어 누운 땅 위에서
서럽게 울 줄을 안
생명이여!

섣달 매운 바람아
동아줄로 어서 날아와
중력도 시간도 없이
세상을 묶어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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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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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동숙 2006-11-02
    저는 올해 첨 사과를 먹어보았습니다만, 무척 맛있었거든요. 내년이 기대됩니다. 그리고 오늘 토종꿀 도착되었어요. 이것 역시 맛있어요~ ^^ 그래서, 오미자 보내주실때 꿀도 이번것과 같은 크기로 보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맛있는 농작물을 믿고 먹을수 있어 고마운 말씀을 드리고 싶군요. 더불어 풀무의 지윤어머님께도 감사드려요. 여길 알게 해주셨거든요~
  • 길벗 2006-11-02
    이렇게 얼굴도 모르고 살다가 어느날 주문을 받고 보내고, 그리고 또 글을 남겨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지운(지윤이가 아니라 2학년 지운이가 아닌지....) 어머님이 저희 집을 소개하셨군요. 따로 인사를 드리겠습니다. 주문하신 오미자는 12월 중에 추출해서 꿀과 함께 또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나동숙 2006-11-06
    저런, 2학년 지운이 맞아요~지운이네요..제가 그만 실수를..^^ 바가지를 보니, 어릴때 시골에서 손바닥만한 바가지(작고 귀여운거 좋아하거든요~)를 가져다가 속을 파내고 말리면서 잘 마를까 노심초사하던 기억이 납니다.. ^^
  • 길벗 2006-11-08
    어릴 때 박을 가지고 노시던 추억이 있으시군요. 혹 괜찮으시다면 사진에 나온 박 중 하나를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올해 처음 박농사를 지어서 훌륭하지는 않습니다만, 그래도 집에
    걸어두고 보시면 정감이 가실 겁니다. ^^
  • 나동숙 2006-11-08
    이런 이런 속 마음을 들켜버렸군요~ 하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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