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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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

  • 길벗
  • 2006-07-15 17:5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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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올라오는 골짜기 초입에서 산사태가 나서 길이 막혔다


산사태가 난 그 아랫쪽 길도 패여 나가서 차가 다니질 못한다

매년 겪는 일이어서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바로 장마를 치르는 일이다. 행사처럼, 손님처럼 오는 장마. 올해는 아마 내려온 이후 가장 길고 지루한 장마가 아니었나 기억된다. 내일 모레까지 비가 더 온다니 정말 지겨운 장마를 겪은 해로 기록될 것이다.

이곳 서석은 태풍이나 홍수로 인한 피해가 큰 곳이 아니라고 한다. 이곳에서 80 평생을 산 노인네의 말이니 믿고 싶다. 그러나 근래에 전국 어디나 그렇지만 이제까지의 경험이나 통계를 넘어서는 돌발적인 날씨가 간혹 일어나 큰 피해를 주곤 하니 어제까지의 기억을 아주 믿을 수는 없다.

홍천을 포함한 강원도가 어제, 오늘 비에 큰 피해가 났다. 우리 <길벗사과농원>은 큰 피해는 없지만 올라오는 길이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몇군데 깊게 패였다. 또 올라오는 길 옆 도랑에 이어진 산 경사면이 산사태가 나서 길이 막혔다. 1미터 가까이 패이고 토사가 쌓이고 해서 길이 막힌 건 올해가 처음이다. 그간도 장마나 태풍 때 집중호우가 오면 길이 패이기는 했으나 이렇게 심하지는 않았다. 아무튼 차가 못다니는 관계로 처음으로 고립되었다. 물론 걸어서야 나갈 수 있지만.

사과나무에 마지막으로 보르도액을 친 게 6월 하순이다. 20일넘게 약을 못치고 있다. 이 장마철에 약을 한달 가까이 못친다는 것은 무모한 일인데, 그런데 어떻하겠는가. 비가 구질구질 계속 오니, 잠깐 날이 개였다가도 금방 또 비가 오니 도무지 병충해 방제를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올해는 유기농 자재인 석회 보르도액을 처음으로 도입하여 방제를 하고 있는데 화학 농약사용 횟수나 양을 작년보다 절반 수준으로 떨어뜨린 것까지는 좋은데 보르도액은 마르기 전에 습기가 차면 바로 약해가 오기 때문에 날이 아주 쾌청한 날에만 뿌려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날이 이런 관계로 10일 간격으로 치라는 보르도액을 지금 한달 가까이 못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이렇게 비가 질금거리면 균들이 더욱 기승을 부려 탄저병 등의 감염 우려가 높은 것이 사실이다. 올해 우리집 사과 겉표면이 조금 만족스럽지 못하다면 그것은 농약을 자주 못친 관계로 인한 것이니 오히려 친환경, 껍질째 먹는 사과의 자랑스러운(?) 표징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무튼 내일 모레 비가 그치고 해가 좋으면 곧바로 석회 보르도액을 치려고 한다. 현재까지는 방제 간격이 많이 벌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육안으로는 별 이상한 점을 발견치 못하고 있는데 과연 어떨런지.

우리 어릴 때(초등학교 때)는 볼 것이 많지 않으니 사실 장마도 큰 구경거리였다. 내 고향 평창에는 평창읍을 휘감고 돌아나가는 평창강이 있는데 장마비가 크게 오면 아이들과 함께 평창강 상리 다리로 물구경을 가곤 했다. 평창강은 제법 강폭이 넓어 아주 높은 제방이 길게 쌓여져 있었다. 그 제방둑을 걸어 내려가며 흙탕물로 넘실대는 강 물결을 보노라면 그때는 어려서 그랬는지 물이 참 무섭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 자체로 자연에 대한 어떤 두려움을 느꼈던 것이다. 가끔, 집 부서진 석가래와 기둥들이 둥둥 떠내려오고 또 가끔은 돼지도 물결에 실려 떠내려가는 것을 보기도 했다. 장마 때 물 구경은 물론 어린아이들만 오는 것은 아니어서 나이든 어른들도 우산을 쓰고 제방으로 오곤 했다.

지금도 거대한 물줄기가 강을 꽉 채운 채 도도히 흘러가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그 곁에 서있는 한 개인으로서의 인간이 얼마나 왜소한가를 느끼게 된다. 그때 자연에 대한 두려움 뿐만 아니라 자연에 대한 한없는 겸손도 동시에 갖게 된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물 건너 김 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눌언동 입구로 가는 길이 물이 넘쳐 막혔고, 선생님도 이사온 이후 이런 강물은 처음이라고 한다. 이번에 정말 오긴 많이 왔나 보다. 골짜기에 갇혀 사니 우리 마을에 어떤 피해가 있는지 알지 못한다. 텔리비전 뉴스를 보니 강원도 여러 곳에서  피해가 많이 났다고 한다. 그저 우리 마을만이라도 무사하기를 빌어 본다.

내일 모레 비가 그치고 해가 나면 포크레인으로 길을 다시 닦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때까지는 꼼짝 못하고 집에 갖혀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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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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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완규 2006-07-20
    治水를 하기는 해야 하는데....
    해마다 장마때면 혹시나 어디 한구석 비 땜시 잘못될까 싶어
    마음 한구석에 근심이 들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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