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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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가 대추알만해졌습니다

  • 길벗
  • 2006-06-09 09:3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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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지 손톱만해진 사과

어제는 오후에 소나기가 퍼부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1박 2일의 수원 농진청 교육을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지난 달에 있었던 그 교육의 두번째 참석이었습니다. 농장의 비전 수립과 마케팅에 대한 집중적인 교육이 있었습니다. 거창한 비전들을 세운 분들도 많았습니다만 저는 \"안전하고 맛있는 사과를 만드는 것\'을 저의 비전으로 세웠습니다. 이를 위해 무농약 사과 재배에 도전해야 하는 것이지요. 5년 안에 이를 수립하는 것으로 했습니다.

사과는 이제 대추알만해졌습니다. 몇몇 나무에 갈반병이 조금 오긴 했지만 전체적으로는 문제 없습니다. 내일 아침에 화학 농약은 마지막으로 한번 더 방제하려고 합니다(수확 전에 기상 이변에 의한 변수가 없는 한). 그러면 올해 우리 농장의 화학적 방제는 네번으로 끝나게 되고 작년에 비하면 절반으로 그 횟수가 줄어드는 셈이 됩니다. 나머지는 \'석회 보르도액\'을 살포함으로써 방제를 할 계획입니다. 과연 이 방제력에 의해 <껍질째 먹는 길벗사과>가 상품성이 있을런지 두고 봐야 할 것입니다.

사과 묘목을 심은 지 5년 째 됩니다만, 올해가 경제적으로는 가장 어려운 해인 것 같습니다. 작년에 첫 수확이 있었지만 양이 아주 작았고, 올해부터 본격적인 수확을 한다고 기대는 하지만 역시 과수 농사는 묘목을 심고 3-4년 수확이 없는 시절을 견뎌야 하니까 이것이 농민들이 과수 농사에 선뜻 발을 내밀지 못하는 이유인 것도 같습니다.

몇년 전부터 어디를 가나 대한민국은 \'대박민국\' 구호가 자연스러워졌습니다. \'대박\'이 들어간 인사말이 자연스럽게 오고가고 그런 만큼 누구나 \'대박\' 맞기를 또 기대하는 것도 같습니다. 이번 농진청 교육을 가서도 느끼는 건데 역시 농사꾼도 \'대박\' 맞기를 소원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지난 5월 교육에서는 소위 성공한 농원에 견학을 갔는데 연 매출이 10억 쯤 되지 않을까 뭐 이런 예상을 하더군요. 정말 엄청난 \'큰바가지=대박\'을 쓴 셈이지요. 그 농원은 허브를 가지고 도시민들을 끌어모아 이런저런 프로그램을 만들고 음식을 만들어 그렇게 \'대박\'이 났다고 합니다.

사실 이 자본주의 시대에 돈 많이 버는 것을 누가 뭐라고 할 것은 없겠습니다. 농업 분야에서도 예외없이 이런 기운이 세게 감돌고 있습니다. 결국 농업에서 대박이 난다는 것은 두 가지 경우이겠습니다. 하나는 농산물을 가지고 어떻게 가공식품을 만들어 히트를 쳤느냐는 것과 또 하나는 남들이 안하는 어떤 작물을 해서 시장에서 많이 팔면 그것도 대박이 되겠습니다.

저는 농산물을 가공해서 팔아야 농민도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을 일찍부터 알긴 했습니다(그러나 그러다가 망한 농민이 몇배는 더 많다는 사실도). 사실 1차 농산물을 그냥 내다 파니까 생산비도 못건진다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니까 누구나 가공을 통한 부가가치 창출에 관심이 생길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가공 기술에서부터 거기에 투입되는 기술 및 장비 개발비와, 어려운 과정을 거쳐 상품을 만들었다고 해도 그것을 팔 수 있는 마케팅 구축과 시장 형성의 문제 등 더 어려운 것들이 도사리고 있어 농민의 가공식품 성공이 그렇게 만만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겨우 하는 것이 집에서 재배한 것을 가지고 전통식품(대표적인 것이 장류) 정도 만드는 것입니다.

또 하나 남이 안하는 어떤 작물을 가지고 돈 벌 수 있다고 하는 것도 어렵긴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본 경우에 의하면 이런 경우 처음 그 작물을 시도한 사람만 돈을 벌고 나머지 뒤따라온 사람들은 대개의 경우 별로 소득을 못보고 결국엔 접고 맙니다. 처음 시도한 사람은 묘목이나 종자를 팔아서 돈을 버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 동네엔 제가 오기 전에 어떤 친구가 머루를 선전했습니다. 그 친구는 머루 묘목을 팔아 돈을 만진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로부터 묘목을 몇백주 씩 산 농민들은 몇년 안가 다시 다 파내거나 그 밭은 애물단지가 되었습니다. 머루 묘목을 사서 심고 키우는 몇년은 그냥 버렸다치고 막상 수확이 되니까 머루를 팔 길이 없는 것입니다. 혹 상인이 와서 사가도 도무지 가격이 맞질 않는 것입니다.

그래도 신문과 잡지, 방송엔 농업에서도 소위 성공했다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고 나옵니다. 이번 농진청 교육을 함께 받고 있는 제주도에서 오신 나이 드신 분이 있는데 제가 그 분께 농민 신문사에서 발행하는 월간 농업 잡지에 제주도에서 브로콜리 등을 대면적 재배하고 있는 분이 있는데 육지에서 들어가 아주 성공한 분이라고 소개가 되었다고 혹시 아시느냐고 물어봤습니다. 그랬더니 그 분 말씀이 대뜸, 그 놈 아주 사기꾼이라고 일축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저보고 그런 잡지에 나오는 놈들 절대 믿지 말라고 엄하게 훈수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저의 장인도 몇년 전에 신문 광고 보시고 상황버섯에 투자를 하셨습니다. 은퇴하시고 적적하셔서 소일 거리로 하신다는 말씀에 큰 반대는 안했는데 결국 사기 비슷한 것에 걸리신 셈이 되고 말았습니다. 2천만 원을 투자하면 2년 안에 일억을 뽑아 준다는 것이 그 업자들의 광고였는데 장인 어른은 설명회와 현장을 다녀오시고는 그 말을 믿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절대 그렇지 않다고, 아니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고 반문을 해보았지만 어르신의 믿고싶은 마음을 돌리지는 못했습니다.  

대부분 이렇다고 보면 됩니다. 제가 이곳에 오기 전에 이미 몇차례 이런 사기가 쓸고 지나갔습니다. 결국 상인들이나 종자 팔아먹은 놈들만 돈 챙겨 간 것입니다. 그런데도 끊임없이 농업에도 대박 소리가 나오고 또 기대를 합니다. 농민들이 살림이 어려워져서 직접 재배한 것을 가지고 식당을 하는 것까지는 뭐라고 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또 간단한 가공(배즙이나 무슨 탕 같은 것)도 좋다고 봅니다. 물론 재주가 좋은 사람도 있어서 몇년의 노력 끝에 새로운 상품이 나오고 시장에서 성공을 해서 결국은 그 길로 가는 것도 문제 삼을 것은 없습니다.  

다만 저의 생각은 농심이 이런 저런 이유와 상황으로 인해 자꾸만 멍들어가는 것을 상심하는 것입니다. \'상대적 빈곤\'이 점점 심화되는 상황에서 농민도 예외는 아니라는 것을, 아니 어쩌면 더 심각한, 나아가서 농민은 어쩌면 \'절대적 빈곤\'에 놓여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농촌에 내려와 보니 농민을 부르는 이름이 여럿 있더군요. 예로부터 농사꾼, 농투성이(농부의 낮춤말) 이랬는데 요즘은 \'농업 경영인\', \'사장님\', \'대표님(심지어 CEO라고 명함에 박은 것도 있습니다)\'이라고 부르더군요. 제 입장에서만 말하면 저는 농부라는 말을 가장 좋아합니다.

우리 대학들이 \'농업대학\'이라고 하면 될 것을 죄 \'생명\'어쩌구 저쩌구 하는 말을 붙였습니다. 저는 이것이야말로 코미디라고 예전부터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농업이라고 하면 장사가 되질 않으니까(학생들이 오질 않으니까) 뭔가 \'마케팅 차원\'에서 이름을 달리한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이름이 바뀌었다고 교과 과정이 달라졌습니까? 교수가 바뀌었습니까? 결국 이것도 사기에 다름 아니다 그런 생각을 예전부터 저는 해왔습니다.  

농업이라는 말이 얼마나 숭고한 이름입니까? 만약 농업이라는 말이 그렇게 없어져야 할 단어라면(또는 쓰기가 거북한 단어라면) 요즘 사람들의 심리는 왜 더욱 건강하고 좋은 농산물만 찾는 세태가 되었는지 이유를 말해줘야 할 것입니다. 농업을 경영을 하든, 비지니스를 하든 결국 농사는 농사이고 농사꾼은 농사꾼입니다. 농사꾼이라는 말이 비하의 뜻이 담겨 있다면 농부라고 하면 그만입니다. 농부라고 부른다고 해서 농업 경영을 이해 못하란 법도 없고 농업경영인이라고 부른다고 해서 농사짓는 이를 남이 더 우대해주고 또 경영 실력이 늘어날 것도 없습니다. 농부는 스스로 농부이지 남의 시선과 대우에 따라 달라지는 그런 존재가 아닌 것입니다. 농업도 마찬가지입니다. 농업이란 말 뺀다고 해서 농업이 농업 아닌 것으로 대체되어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 것은 다 시장을 고려해서 나온 술수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저 누군가는 농사를 지어야 하고, 그 농사는 정직해야 하고, 더 나아가서는 아름다워야 하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현실이 농업에 어려운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농업이 가장 중요한 사실-농사를 짓고 누군가는 그것을 먹는-을 왜곡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농부는 좀 가난해야 합니다. 크게 돈 벌면 안됩니다. 모든 것이 돈 많이 버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진 이 세상에서, 그래서 \'대박\' 운운하는 천박한 세상에서 그래도 농사는, 농부 만큼은 적당한 수준에서 생계를 이어가야 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 적당한 수준이란 사람따라 다르겠습니다만, 적어도 대박을 노리는 심사는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또 누군가는 농부라고 \'그랜다이저=그랜저\' 타지 말란 법 있느냐고 큰 소리지만 저는 농부는 그저 앨란트라 정도 타고 다니면 참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것도 아니면 1톤 트럭 타고 다녀도 미국, 일본 빼놓고는 다 다녀올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농부는 옷 잘 입어야 하는 존재가 아니고 소박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렇질 않다고 하면 농사는 애시당초 짓질 말았어야 한다고 봅니다. 세상엔 돈 벌이가 되는 많은 다른 직업이 널렸으니까요.

글 올린지가 꽤 되서 잠깐 쓰려고 들어왔다가 또 얘기가 길어졌습니다. 또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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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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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금성 2006-06-11
    농부가 하는 진짜 농업 이야기를 들으니, 먹을거리 어느 것 하나를 앞에 두고도 여러 생각이 듭니다. 고마운 말씀입니다. \"농부는 좀 가난해야합니다.\" 란 말을 들으니 이렇게 또 들립니다. \"교사는 좀 더 가난해야 합니다.\"라고요. 돈이 어른거리면 아이들도 돈으로 보이는 세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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