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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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과와 가지 유인을 하고 있습니다

  • 길벗
  • 2006-05-21 09:2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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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 맺힌 모양


가지 유인

우리 <길벗사과농원>에는 홍로 200주, 부사(오리지날 부사보다 조금 일찍 나오는 히로사키 라는 품종) 300주, 그리고 올해 옮겨 심은 선홍(8월에 나오는 조생종) 120주가 있다. 홍로는 9월에 나오는 사과로 단과지 형이라 꽃이 잘 피는 것은 좋은 데 너무 과하여 마치 개나리처럼 핀다. 그래서 꽃따기(적화)부터 시작하여 사과가 콩알만하게 맺히는 시기까지 계속해서 따주어야(적과) 겨우 작업을 마칠 수 있다.

사과꽃은 한송이에 다섯개의 꽃이 핀다. 따주지 않으면 모두 사과가 되는데(위 사진) 여기에서 가운데 가장 실한 놈 하나만 남겨두고는 나머지 4개는 또 따주어야 한다. 그러니까 한뼘 간격으로 적화를 해야 하고 또 나중에 일일이 하나만 남겨두고는 적과를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 일이 무척 많다. 사과꽃은 중심화가 먼저 피고 곁에 있는 것들은 조금 늦게 핀다. 그래서 중심화가 먼저 수정이 된다는 점을 이용해서 만개일을 잘 살피고 수정 여부를 확인한 후(대개 만개 7-8일 후. 만개는 전체 과원의 중심화가 70-80퍼센트 개화된 시점) 세빈이라는 살충제를 적과제로 살포하는 것이다. 그러면 나중에 핀 필요없는 액화(겨드랑이 꽃)도 함께 떨어져 효과는 아주 좋은 편이다. 그러나 이 세빈이라는 살충제가 해충과 익충을 가리지 않고 모두 제거하기 때문에 나는 적과제 살포를 하지 않는다. 힘들어도 손으로 다 따낸다. 꽃따는 인부를 쓰면 좀 편하겠지만 올해는 그냥 우리 힘으로 해볼 작정이다.

작년 첫 수확 때는 몰랐는데 올해는 사과농사에 대한 느낌이 다르다. 이 얘기는 작년까지는 내가 건달 농사를 지었다는 얘기다. 올해 유인작업을 해보니 보통 일이 많은 것이 아니다. 하긴 겨우 600주 남짓한 규모 가지고 엄살이냐고 하실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다. 사과 과수원도 만 평 이상 경영하시는 분들도 교육 가서 몇 분 만나 봤다. 몇십 명 씩 인부를 쓴다고 했다. 몇 만 평을 해도 사람 사서 하는 농사는 주인이 크게 힘들 것이 없겠다. 작아도 우리처럼 그저 우리 손으로 다 해보려고 하니까 바쁜 것이다.

유인 작업은 끈으로도 하고 추로도 한다(위 사진). 나무는 직립하려는 성질이 있는데 옆으로 누워야만 꽃눈이 오고 꽃눈이 와야 열매가 맺히는 것이다. 그래서 가지를 일일이 옆으로 누이는 작업을 유인한다고 하는데 시기를 놓치면 가지가 굳어져서 휘어지질 않는다. 바로 5월에 가지에 물이 올랐을 때 해야 하는 것이다. 작년에 좀 게을렀더니(허리가 아파서 작년은 5월 내내 병원에 들락거리고 오래 서 있질 못했다) 올해 그만큼 일이 많고 나무 수형도 말이 아니다.

농사 초보가 가까운 이웃에 사과 농사 짓는 이도 없는 홍천에서 처음으로 사과 농사를 해나가자니 어려움이 많다. 그래도 멀기는 하지만 상주의 김칠성 선생님 같은 분이 있고 또 군위에 국가 기관인 사과시험장 같은 곳이 있어서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 인터넷 덕분에 김칠성 선생이 주도하는 \'석회 보르도액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모임-석사모\'에서도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 그래도 독농가는 외롭고 어렵다.

아마 6월 초순까지는 이렇게 바쁠 것 같다. 날은 점점 더워오고 일하기는 그만큼 힘들 것이다. 그래도 아직은 농사가 재미가 있다. 9월이나 되야 손에 돈을 좀 만질 것이다. 옛날에 보리고개라더니 이제사 실감을 한다. 농경 사회에서 모든 농사는 가을이 되야 소출이 있으니 춘궁기가 있음이 절로 이해가 간다. 시골 농약방에서 그래서 다 외상을 준다. 가을에 갚으라고.

작년 이맘 때는 응애 때문에 놀란 적이 있다. 잎이 이상하게도 오그라들고 어떤 나무는 전체가 시들해지는 것이 보이는 것이 아닌가. 책에서만 본 응애 때문이라고는 생각도 못하고 궁금해 했는데 이웃에 배농사 짓는 분이 루빼(돋보기)를 가지고 오셔서는 \'어이구 응애 세상이구먼\' 했다. 5월 초에 하라고 되어있는 응애약 살포를 생략한 결과였다. 부랴부랴 응애약을 단용으로 살포하고 며칠을 초조히 보낸 후 살펴보니 다행히 방제가 잘 되었다.

사과농사에서 응애가 제일 무섭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래서 응애 방제가 어렵다고 하는데 올해는 작년 기억을 하고 유심히 살피고 있다. 그런데 거의 응애가 없다. 아마 올해 처음으로 시도한 석회유황합제 살포와 기계유유제(식물성 오일) 살포가 월동 응애알을 잘 방제해주지 않았나 짐작한다. 응애 뿐이 아니라 올해는 복숭아 순나방과 잎말이 나방도 아직 거의 볼 수가 없다. 이것 역시 위에 말한 두번의 방제가 가져다 준 결과가 아닌가 생각한다.

요즘 날이 무더워 이틀 마다 관주를 해주고 있다. 우리 과수원의 최대 약점은 물이다. 아직까지는 그럭저럭 견디고 있는데 만약 지독한 가뭄이 온다면 대형 관정을 파야만 할 것이다. 그러나 그때까지는 현재의 관정과 집 앞 조그만 개울물로 견딜 수 있을 것이다.

낮에는 뻐꾸기가, 밤에는 소쩍새가 운다. 소쩍새 우는 소리는 정말 처량하고 때로는 비감해지기까지 한다. 과수원에서 일하면서 뻐꾸기 우는 소리를 듣로라면 어릴적 초등학교 다닐 때 엄마따라 비탈밭 일구던 생각이 난다. 그땐 지게에 똥거름을 지고 올라가 괭이로 일일이 골을 켜야만 했다. 감자, 고구마, 옥수수 등을 심어 여름에 점심 주식으로 삼았던 것이다. 강원도 비탈밭은 돌밭이 태반이다. 그러니 힘이 곱은 더 든다. 그때 여름이면 무조건 점심에 감자, 옥수수 삶은 것을 먹었다. 하도 지겨워 지금은 감자, 옥수수를 거의 먹지 않는다. 강원도에서 나고 자라지 않은 사람은(또 공무원 아버지를 두었던 사람도 빼고) 이런 경험이 낯설 것이다. 하긴 나도 대학 때 이런 얘기를 했다가 서울 출신들로부터 \'야, 니가 무슨 6.25때 살았냐, 뻥까고 있다\'는 얘길 간혹 들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전기가 들어왔고, 중1 때 TV가 집에 장만되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여로>라는 연속극이 대히트였는데 학교에 가면 그걸 보고 와서 목소리와 몸짓(장욱제 씨가 장애인 역이었다)을 기막히게 흉내내며 그대로 중계해주던 친구가 있어 비록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기억에 많이 남는다. 텔리비젼이 들어오기 전까지 우리집의 유일한 통신 매체는 라디오였는데 그때 저녁마다 라디오 연속극을 온 가족이 들으며 웃고 울고 하던 기억도 난다. 보지 않고 듣기만 하여도 그렇게 감정이 북받치고 울렁거릴 수 있다는 경험, 오히려 눈으로 보지 않으니까 상상력을 더 자극할 수 있다는 경험을 그때 했다.

5월이 되니까 농촌에서는 부지깽이도 일어나 일을 해야 할 만큼 바쁘다. 아랫집 한수 형님은 \'요즘 같아선 죽고 싶어도 바빠서 못 죽는\'다고 너스레다. 논일에 밭일에 모든 것이 한꺼번에 심겨져야 하는 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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