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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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꽃 만개, 꽃따기에 바쁩니다

  • 길벗
  • 2006-05-10 23:0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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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월요일(5월 8일)부터 꽃따기에 돌입했습니다. 오늘(10일)이 만개일 같습니다.
올해는 부사도 꽃이 제법 많이 왔습니다. 일단 개나리같이 꽃이 피는 골치 아픈(?) 홍로부터 꽃따기를 해주고 있습니다.
올해는 외부 인부를 한 사람도 쓰지 않고 오로지 우리 부부 노력만으로 해결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작년엔 제가 뜻하지 않게 4월부터 허리가 심하게 아픈 바람에 아주머니 세 분을 3일간 고용해야 했습니다. 인건비가 아까운 것도 그렇지만 안사람 말로는 점심과 참 해대기가 버거워서 힘들어도 그냥 우리 힘으로 끝내자고 합니다.

저는 늘 그렇지만 좀 날라리입니다. 그새 서울에 이틀 다녀오고 이번주 금요일부터 토요일까지 1박 2일 동안 수원의 농촌진흥청에 교육 받으러 다녀와야 합니다. 제가 있으나 없으나 꽃따기는 오로지 안사람의 몫이 되고 말았습니다.

꽃따기(적화)는 일찍 해줄수록 나무의 힘을 덜어줘서 남아있는 꽃으로 양분이 몰려 과실도 커지고 나무도 세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줍니다. 그러나 적화만으로 작업이 완벽히 끝날수는 없는 노릇이어서 2차, 3차 계속 하다보면 어느새 콩알만한 과실이 맺힐때까지 계속 따내기는 이어집니다. 심지어 저는 수확 전까지도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적과를 합니다.

이런 꽃따기 노력은 일년 전체 사과 농사에서 크기로 따지면 절반에 가까운 일에 해당되어 아주 품이 많이 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한해 농사의 승패가 여기에 달려있다고도 합니다. 시장에서 소비자들이 대과를 선호하기에(이미 몇차례 농사이야기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사과를 크게 하려고 다 이런 힘든 일을 합니다. 물론 약제 적과 방법도 있습니다. 세빈이라는 살충제를 약 800배 정도 희석해서 만개 후 10일 정도 되는 시점에 살포하면 쓸데없는 사과꽃인 액화를 손쉽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래도 손적과는 어느 정도 필수입니다만, 세빈이라는 약제가 수정에 관계하는 벌 등 곤충에 치명적이기 때문에 대면적 재배 농가에서는 어쩔 수 없지만 저희같은 소농에서는 불가피하지 않으면 쓰지 않으려고 합니다.

사진에서처럼 온밭이 하얀 사과꽃으로 물들었습니다(농사갤러리에도 사진 올렸습니다). 초여름에 이와같이 눈송이가 내린 것 같은 아름다운 사과밭을 본다는 것은 그 자체로  황홀한 체험입니다. 자연이 주는 기쁨을 한껏 들이마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워낙 따내어야 하는 사과꽃이 많다보니 나중엔 노동만 남고 낭만적 취향은 현실에 밀려 보이지 않게 되기도 합니다. 그래도 꽃 속에서 일을 한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겠습니다. 같은 노동이라도 퀴퀴한 냄새가 배인 곳이거나 어두침침한 곳이 아니고 5월의 신록과 따사로운 햇볕 아래서 순수한 공기를 마시며 하는 꽃따기 작업은 사실 도시민들에게 농사 체험의 장으로도 손색이 없을 듯 합니다. 다들 바쁜지, 아님 사과꽃 향기와 정취를 아직 몰라서인지 올해는 온다는 사람도 아직 없습니다.

아랫녘 사과 주산지에서는 인공수정을 시도하는 분들도 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만(그렇게 하면 모양도 좋고 크기도 더 좋아진다고 합니다) 원체 번거로운 일이고 또 꽃가루 체취하는 장비도 이곳 농업기술센터에는 없어서(있다고 해도 상관없지만) 저는 그렇게까지는 할 생각이 없습니다. 그저 맛있고 안전한 사과를 만들면 됐지, 너무 외관의 품질을 따지다간 일에 묻혀 헤어나지 못하게 될 것 같은 기분입니다. 저는 좀 적당히 게으른 사람이라 유난스럽게 일하는 체질은 아닌 듯 합니다.

6년 전 시골로 올 때, 오디오도 다 팔고 판도 다 팔고 내려왔더랬습니다. 판은 LP판이 한 천여장 되었었고, CD가 백오십장 정도 되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좀 미친 짓이었습니다. 제일 후회하고 있는 일 중의 하나입니다. 서울서 직장 다닐 때는 스트레스나 피곤을 술 아니면 음악 듣는 걸로 해치웠는데 이곳에 와서 한 오년 자연의 소리만 들으니 한결 편안한 점도 많지만 때로 인공적인 그 음을 듣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지난 초겨울 없는 돈에 두 눈 딱 감고 다시 오됴질을 해버렸습니다. 물론 예전에 비하면 소꿉장난입니다만(시디도 원주 황 박사네 집에 가서 몇십장 그냥 들고 와버렸습니다) 가끔 예전만큼은 아니어도 황홀한 기분을 느낍니다. 깊이있는 매니아급은 아니고 그저 귀동냥이나 하는 수준입니다만 겨울에 브람스의 첼로소나타를 오랫만에 듣는 감흥은 오히려 서울에서보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컸습니다. 오디오가 단촐해졌는데도 소리가 훨씬 풍윤해진 것입니다. 아파트와 단독주택의 차이 그리고 거실의 크기와 공기의 순수함(?) 때문이 아닐까 짐작해봅니다. 엘피 플레이어가 없어서 엘피판을 못듣는 게 한입니다만, 언제 다시 토렌스 520에 3012R 암대를 달아 MC 바늘이 긁어주는 후벼파는 듯한, 그러면서도 상처를 주지않는 그 예리하면서도 따뜻한 소리를 다시 들어볼 수 있을까 혼자 아쉬워하고 있습니다. 그 아쉬움은 연인에게 사랑을 고백했건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때의 그 상실감에 비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촌구석에 살면서 별 감상을 다 옮깁니다. 이젠 그저 촌놈으로 농부로 거칠고 투박하게 살아야겠다고 생각해봅니다. 이제 제 갈길은 이미 정해졌고 오로지 사과와 혹 좀더 투구할 힘이 남아 있다면 된장 만드는 일, 그리고도 좀더 에너지가 솟아난다면 벌 치는 일에도 손을 대보고 싶습니다. 이즈음의 제 생활은 이렇습니다. 그저 먹고살 방도, 그리고 그속에서 하나라도 뭔가 의미와 기쁨을 찾으려는 노력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나날입니다.

요즘 어떤 사람으로 인해 마음과 몸이 많이 피폐해져서 좀 쉬고 싶기도 합니다. 그러나 해가 뜨면 지천에 널린 게 일입니다. 아마 일년내 해도 끝내 정리가 되지는 않을 듯 싶은 그런 일들이 시골생활에는 널려 있습니다. 그저 황소걸음으로 살아나갈 수밖에 다른 방도는 없는 듯 합니다.
사과꽃 지기 전에 오셔서 보시길....연락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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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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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금성 2006-05-12
    아름다운 사과꽃, 꽃따기, 그리고 후벼 파는 듯한 소리, 널린 일, 황소걸음... 하나같이 눈에 확 박히는 글자네요. 현이네 삶이 이리도 다양합니다. 마음 부자시라 먹을거리를 키워 이렇게 나누어 주십니다. 귀한 걸 잘 알았습니다. 이 글을 풀무 까페에 옮겨 같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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