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이야기

농사이야기

또다시 봄은 오고

  • 길벗
  • 2006-03-19 14:5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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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은 따스하나 바람은 찹니다.
눈은 다 녹았으나 아직 골짜기에는 얼음이 남아 있습니다.
그래도 철쭉 눈이 조금 부풀어 오르고 목련도 꽃이 될 봉오리가 봉긋합니다.
봄이 오는 기미가 조금씩 느껴집니다.

봄이 오면 늘 또다시 봄이 온다고 하는 것 같습니다. 겨우내 움츠렸던, 생명을 잠시
죽이고 살던 것들이 꿈틀꿈틀 비비고 올라오기 때문일까요?
농부에게 봄은 희망의 계절인 것 같습니다. 도시에서 살 때 콘트리트 건물 속에서
일년 365일을 살때는 봄이 오는지, 가을이 가는지를 잘 알지 못했습니다.
자연히 계절이 가져다주는 이 자잘한 살아 있는 느낌을 거의 체감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 봄이 희망을 가져다 주는지 겨울엔 좀 쉬었다가는 그런 기분이 드는지를
통 느끼지 못했습니다.

어릴적 추억 속의 산골처럼, 지금은 그런 느낌을 온몸으로 가져봅니다.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 나이에 이런 감상을 느끼는 것이 과연 철없는 짓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번호 <녹색평론>을 보니 전남 어디로 귀농한 분의 이야기는 저보다
한참이나 더 힘든 과정을 겪으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지난 주 목요일에는 상주의 김칠성 선생 댁으로 사과 교육을 받으러 갔었습니다.
아직 몸이 완전치는 않지만 선생님이 꼭 오라고 전화까지 하신터라 장거리 운전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무농약 사과 농사에 도전하고 싶은 뜻은 처음부터 있었지만 제 마음 속에 여러
어려운 것들이 도사리고 있어서 그간 계속 기웃거리기만 했는데 선생님의 확고한
의지와 경험을 믿고 이제 시작하려 합니다.

김칠성 선생님 댁에서 여러 자재 만들기와 석회 보르도액 사용기에 대해 또다시
들었습니다. 선생은 자신이 직접 만든 여러 재료를 친절하게 몇통 나누어주시기도 하였습니다.
사실 사과 농사를 짓기 전에는 알지 못하던 분이었고, 제가 선생의 홈페이지를 보고
3년 전에 무작정 한번 찾아가 뵌 적이 있었을 뿐, 그러다가 선생님의 농사법에 동의하는
농사꾼들이 많아져서 이제는 제법 여러 곳에서 강의를 하시기에 앞서도 썼지만
지난 겨울에 교육을 들으러 간 것이 전부일 뿐입니다.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댓가없이 나누어주는 선생이야말로 참다운 농사꾼이 아니냐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더구나 그날 댁에서 점심을 나누며 이런저런 담소 속에 나와 일치하는
부분이 있을 때 저는 속으로 우리 참 잘 만났다 하는 건방진 생각도 했습니다.
그건 다름이 아니라 무농약 농산물일수록, 유기농 농산물일수록 그 가격이 싸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선생의 이러한 생각은 지금 시장의 기능으로 볼 때 역행하는 것입니다.

저도 주위에서 많이 듣는 얘기 중의 하나가 고급품 만들어서 비싸게 팔아야 농사지어
먹고 살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얘기는 부자들을 겨냥해서 농사지으라는 말과
동의어인데 실제로 어떤 분들은 직설적으로 부자 상대해야 먹고 살 수 있다고 저보고
얘기합니다.
그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저의 마음은 참 편하지 않았고 과연 그럴까, 혹은 그래야 할까
늘 답답했습니다.

맛있고 안전한 사과를 좀더 많은 사람이 부담없이 먹을 수 있다면 그것 이상 저에게는
보상이 있을 수 없다고 제 마음은 늘 얘기해 왔습니다. 그런데 현실의 사과 가격은 사실
굉장히 비싸고 또 생산비도 적지 않았습니다.

선생의 지론은 화약농약을 안쓰고 자신이 주장하는 석회 보르도액을 이용한 무농약
농사는 오히려 관행농법보다 더 생산비가 적게 들어가니 비록 무농약이라고 해도
싸게 팔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간단 명쾌한 논리입니까?

저는 사실 진리는 단순 명쾌한 것이라고 믿습니다. 시장의 논리를 운운하는 것은
생명을 죽이는 자본주의의 논리요, 그저 농부가 먹고 살 정도만 된다면 최소의 가격으로
최대의 안전한 먹거리를 제공하는 것이 농부의 존재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올해부터 선생의 사과 농사 방제력을 그대로 따라 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내년에는
무농약 사과 농사에 도전하기로 했습니다. 올해는 화약 농약을 세번만 치고 나머지는
석회 보르도액으로 방제를 합니다. 그래서 올해는 무농약은 아닙니다만 작년에 비하면
1/3 정도의 농약 밖에는 치지 않습니다.
저도 이 실험에 대해 약간의 걱정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위에서 말씀드린대로 믿고
따라가기로 했습니다. 올해 농사짓는 이력은 그때그때 <농사이야기>에 적어 올리겠습니다.

올봄은 늘 그렇지만 역시 일이 많습니다. 과연 다 제대로 할런지 이 게으른 농부는 걱정부터
앞섭니다. 그저 몸과 마음이 따라주는 한 해나가야겠지요.
봄이 왔지만 아직 바람은 찹니다. 또 쓰겠습니다.

아참, 앞글에서 말한 금순이는 좋은 결과를 주지 못하고 갔습니다. 1등급을 맞기는 했는데
워낙 무게가 적게 나와서 소위 돈이 되질 않았습니다. 암소는 비육을 시켜도 거세우보다
못하다네요. 그래서 암소 비육이 어렵다고 합니다. 이번에 여러가지를 배웠습니다.
이런저런 손해와 맘고생을 겪으면서 배우고 또 농부가 되어가는 것이려니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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