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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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기르는 이야기(3)

  • 길벗
  • 2004-11-16 20: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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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사 터를 포크레인으로 닦으면서 우사의 규모와 재질, 비용 등에 관하여 여러 날 고민이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물론 지혜 아빠랑 수차례 의논에 의논을 거쳤습니다. 결국 50m/m 건축용 파이프로 구조를 하고 위는 하우스 파이프로 지붕 처리를 하여 비닐 하우스 형 우사로 하기로 했습니다. 면적은 50평 정도 되었습니다.

아버님과 함께 10월부터 조금씩 짓기 시작한 것이 11월이 끝나갈 무렵에야 완성을 보았습니다. 이번에도 역시 완규 선배가 가끔씩 손을 보태줬고, 이웃 환수 형님도 여러날 오셔서 도와주셨습니다. 그리고 지혜아빠는 볏짚 걷으러 다니는 바쁜 중에도 틈을 내어 용접을 해주었습니다. 철 문짝만 철공소에 맞춰서 왔습니다.

소 값은 2003년 연말로 갈수록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르기만 했습니다. 10월 초순 경, 그동안 조금씩 모아 두었던 돈으로 한 동네에 사는 춘경이 아저씨네 늙은 암소를 430만 원을 주고 사왔습니다. 임신 4개월 된 놈이었습니다. 이 놈은 집 옆에 허름하게 아무렇게나 지은 하우스 안에서 우사가 완성될 때까지 임시로 지냈습니다.

2004년 1월이 되자 한우 값은 그야말로 천정을 쳤습니다. 임신한 소의 경우 600만 원을 넘어섰습니다. 6개월 된 암송아지 값도400만 원 가까이 했고 수송아지는 300만 원 내외를 기록한 것입니다. 단군 이래 최고의 소값이었습니다. 그래도 저는 소를 사야만 했습니다. 소 값이 언제 내릴런지 알 수도 없고 마냥 내리기만을 앉아서 기다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올 1월과 2월에 임신한 한우를 3마리 더 샀습니다. 각각 600만 원이 넘는 그야말로 금값 소들이었습니다. 번식우만 하지 말고 비육우도 한번 경험해보라는 이곳 '홍천 늘푸름 한우회' 전 회장인 최부규 씨의 소개로 수송아지도 3마리 샀습니다. 이놈들은 6-7개월 된 것들을 각각 270만 원을 주고 샀는데 곧바로 거세를 하고 현재는 500키로그램에 육박하는 놈들로 자라나 있습니다. 내년 8월 경 공판장으로 나가게 될 것입니다.

우사에 소들이 가득 차자 그야말로 마음은 부자였습니다. 각 소마다 이름을 다 지었습니다. 그리고 3월부터 송아지를 낳기 시작했는데 점순이가 3월에, 복순이는 4월에, 순심이는 6월에 예쁜 암송아지들을 낳아주었습니다. 3연타석 안타를 친 셈인데 아는 사람들마다 함께 기뻐해주었습니다. 이는 암송아지가 수송아지보다 약 1백만 원 정도 더 값이 나가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8월에 금순이가 수송아지를 낳아서 올해는 총 4마리의 송아지가 생산되었습니다. 모두 건강하고 잘 자라나 주어서 수송아지만 빼고는 이젠 제법 큰 송아지 티를 내며 잘 자라고 있습니다.

소 기르는 것도 소위 사양기술이라는 것이 필요한데 저는 일단 '월간 축산'을 소 시작하기 전부터 정기구독을 하며 모르던 것을 알아나갔고 지혜 아빠가 한우가 아닌 낙농 분야이긴 하지만 많은 충고를 옆에서 해준 덕분으로 아직까지는 큰 일 없이 해나가고 있습니다. 또 위에서 밝힌 '홍천 늘푸름 한우회' 최 전회장님이 관심을 갖고 수시로 조언을 해주시는 것도 큰 힘이 됩니다. 최 전회장님은 자타가 공인하는 한우 비육의 최고 전문가입니다.

이제 한우를 기른 지 만 1년, 그간 이런 저런 경험을 생각보다는 많이 했습니다. 또 국내 한우 시장이랄까, 현재의 상황이랄까에 대해서도 조금씩 눈을 떠나가고 있습니다. 앞으로 차차 이런 것들에 대해서 정리해서 올리기도 하고 제 생각도 밝힐 수 있었으면 합니다. 현재 구독하는 가축 관련 잡지는 '월간 축산', '월간 종축개량', '월간 한우' 등이 있습니다.

아직 소 기르기에 관한 한 햇병아리 수준을 맴도는 고로 그저 남의 경험과 지식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소 사육에 대해 처음부터 찬성해주고 또 함께 지극 정성으로 소를 돌보는 안사람의 노력에 대해서도 외면할 수 없습니다. 서울서 제가 직장 생활 할 때는 그저 닫힌 아파트 좁은 공간 안에서 시간을 보내던 아내가 이제는 저와 동등한 훌륭한 사업 동반자 내지 동업자가 되었습니다.

참, 일흔이 되신 아버님도 잔소리가 무척 많기는 하시지만 언제나 함께 농장 일을 하시는 좋은 충고자이십니다. 서울서는 가까운 도봉산에 약수 뜨러 다니는 것이 유일한 소일거리셨는데 이곳에 와서는 누구보다도 활기차게 생활하십니다. 비단 소 기르는 일만이 아니라 토종벌치기에서부터 메주 쑤는 것, 김장, 우리 먹을 채소며 콩 수확에 이르기까지 모든 일에 아버님은 타고난 농사꾼이십니다. 강원도에서 태어나 농사꾼으로 사시다가 산업화 바람에 밀려 도시로 나가 막노동과 이런 저런 장사로 힘든 가운데에도 우리 형제를 대학까지 보내신 부지런한 분이십니다.

소 기르는 이야기는 여기까지로 마감하고 이후에는 그날 그날의 얘기를 쓰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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