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기르는 이야기(2)
- 길벗
- 2004-11-13 23:2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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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 아빠를 알게 되고나서 가끔씩 방문해 서로 많은 얘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지혜 엄마와 제 안사람과도 서로 친하게 되어 더욱 자주 만나서 농사 얘기며 아이들 학업 얘기며 살아가는 얘기를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좋은 이웃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그러고보니 이곳에 와서 완규 선배, 철민 아빠, 청산목장 길정 씨 등을 만나 많은 도움을 받고 서로 이웃하게 되었는데 이제 지혜네와도 마음이 통하는 이웃이 된 것 같습니다. 지혜 아빠인 정봉조 형은 경상도 산청 사나이고 지혜 엄마는 전라도 익산 분입니다. 영호남이 만나 부부가 되었는데 참 잘 어울리는 분들 입니다. 지혜 아빠는 기계와 전기 쪽에 해박한 지식과 많은 실무 경험이 있어 한 마디로 시골 생활에 막힘이 없는 분입니다. 성격도 시원시원하고 사람을 편하게 대해주어서 이곳 토박이 농사꾼들과도 격의없이 지내고 저 같이 얼떨떨한 기계치에게는 하늘 같이 높게 보이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지혜네는 귀농 후 어려움 끝에 낙농을 하게 되어 이제는 기반을 잡았습니다. 자신이 몇년 경험을 쌓고난 후라 저에게도 자신있게 소 사육을 추천했습니다. 저와 안사람은 자신도 없고 또 처음 시작하려니 우사며, 사육 방법이며, 구입 문제 등 많은 어려움이 앞서 있었는데 정봉조 형이 일단 비육우 사육부터 시작하라고 해서 구입 비용도 적게 들고 경험도 쌓을 겸 해서 육우 비육을 하기로 작정했습니다. 이때가 2003년 5월 말이었습니다. 여기서 육우라고 하는 것은 젖 짜는 암소(홀스타인 종)가 낳은 숫송아지를 키워 고깃소로 파는 것을 일컫는 말입니다. 한우 숫송아지 가격이 200만 원 이상을 하는 데 비해 홀스타인 젖소 숫송아지는 50만-60만 원 밖에 하지 않습니다. 물론 나중에 다 키워 팔 때에도 한우에 비해 가격이 많이 낮습니다만 어쨌든 시작은 수월하겠지요. 그러나 몇 마리 키워서는 수지가 맞질 않아서 대개 육우 사육은 100마리 이상 육우만을 전문적으로 사육하는 분들이 합니다. 저는 경험 삼아 또 똥을 받을 목적으로 시작을 하게 되었습니다.
5월 말부터 6월 중순에 걸쳐 지혜 아빠와 엄마가 인근 내촌면에서 낙농을 하는 분들에게 부탁을 하여 초유떼기(생후 일주일 된 홀스타인 숫송아지를 말합니다. 원래 낙농은 우유를 생산하기 위해 임신을 시키기 때문에 숫송아지가 나오면 일주일만에 어미와 격리시키지요) 다섯마리를 차례로 직접 운송해주었습니다. 정말이지 자기는 하나도 남는 거 없이 남을 위해 이렇게까지 수고해주는 그 마음이 무척이나 귀하고 고마웠습니다. 지혜 엄마, 아빠는 오직 같은 귀농인인 우리가 빨리 터잡고 잘 살기만을 진심으로 바라는 마음에서 수고를 아끼지 않은 것입니다.
초유떼기를 가져온 날부터 약 한 달 동안은 사람이 하루 두번 직접 분유를 타서 먹여야 합니다. 한 마리도 아니고 다섯마리나 되니 안사람이 아침 저녁으로 애기 키우는 심정으로 부지런히 키웠습니다. 초유떼기를 가져다 기르는 것은 경험있는 사람들도 가끔씩 실패를 한다고 합니다. 만약 한 마리라도 죽으면 나머지 네 마리를 잘 키워서 나중에 팔아도 이익이 보장되질 않으니 사실 육우 초유떼기 사육은 무척이나 힘들고 귀찮은 일입니다. 어찌됐거나 지혜 아빠로부터 이런저런 지도도 받고 또 육우 사육 책도 부지런히 보면서 키우던 중 하루는 아침에 나가보니 큰 일이 벌어져 있었습니다.
송아지 중 한 마리가 배가 풍선처럼 빵빵해져서 네 발을 하늘로 들고는 누워있는 것이었습니다. 소위 고창증이라는 병이 발병한 것입니다. 이때가 두 달이 다 되가던 시기였는데요. 고창증이란 위에 가스가 차서 배가 부풀어오른 것입니다. 가만두면 몇 시간 못가서 죽게 된다고 합니다. 위에 찬 가스를 인위적으로 빼주어야 하는데 문제는 제가 이런 일에 전혀 경험이 없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참으로 다행한 것은 장인 어른이 수의사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미 은퇴하여 고향에서 노후를 보내고 계시지만 그전에는 파주에서 가장 알아주던 대가축 전문 명수의사셨습니다. 이때만큼 핸드폰이 요긴하게 쓰인 적도 별로 없는 듯 합니다. 핸드폰에서 들려오는 장인 어른의 지시에 따라 투관침(큰 주사기 바늘을 사용함)을 누워 있는 송아지의 복부 속 위를 찾아 찔렀습니다. 몇 번을 찔러도 가스가 빠지는 소리는 들리지 않고 송아지는 고통에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래서 다시한번 송아지 척추에서부터 거리를 재서 찔렀습니다. 과연 가스가 빠지는 것이었습니다. 냄새는 고약합디다. 다쓴 볼펜 심을 죽창처럼 짤라 그것으로 투관침을 대신하여 찌르니 훨씬 가스가 잘 빠졌습니다. 결국 그 송아지는 살아났고 이후 한달간 격리되어 보호를 받은 결과 아주 건강하게 되었습니다.
우사는 비닐 하우스로 임시로 급히 지어 거기에서 길렀습니다. 그러나 송아지들이 자꾸만 커나가자 불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우사를 어느 정도는 제대로 짓긴 지어야겠는데 건축 비용이 만만치 않게 들기 때문입니다. 업자에게 주면 평당 20만 원 이상이 들것입니다. 물론 내가 지으면 많이 절약되지만 그래도 최소한 평당 10만 원은 잡아야 할 것입니다.
태풍 루사를 위시하여 작년(2003년)은 비도 많이 오고 비 피해도 컸던 해였습니다. 다행히 이곳 홍천 서석은 큰 피해없이 지나갔지만 동해안은 쑥밭이 되었다고 뉴스에서 보았습니다. 아무튼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되니 겨울이 오기 전에는 어쨌든 우사를 지어야만 했습니다. 주머니에 돈도 없는데 어떻게 하나, 걱정만 하면서 그래도 어떻게 되겠지 이상한 배짱으로 우선 우사 터부터 닦기 시작했습니다. 마침 중고 포크레인을 여름에 구입해둔 터라 직접 사과밭 귀퉁이 집 가까운 곳에다가 우사 터를 확정하고 일단 터닦기 작업에 착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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