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이야기

농사이야기

지나간 이야기들-다섯번째

  • 길벗
  • 2004-10-02 11: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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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제가 1998년 2월 '제1기 공생농두레 귀농학교'에 참석하고 난 후에 소감을 쓴 것으로
<녹색평론> 통권 40호에 실렸습니다. 그 때의 제 심정과 상황을 알 수 있어 이곳에 전문을 올립니다.


선생님,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서울로 돌아와 바로 글을 올린다는 것이 회사 사무실 이전 관계로 여러날 정신이 없다보니 차일피일 미루게 되어 오늘에야 겨우 몇자 적어 올리게 되었습니다. 제가 근무하는 곳이 대기업 사주가 설립한 비영리 공익법인입니다만, 경제가 어려워지다 보니 그동안 있었던 사무실을 사무실을 내놓고 축소하여 그룹 계열사 건물로 이사를 한 것입니다. 아무래도 그룹의 지원으로 여러 사업을 벌이는 곳이니만큼 가장 먼저 사업시행에 타격을 받는 곳이 저희 같은 사회사업을 하는 곳이지요. 다른 기업들도 홍보비니, 문화사업 지원비 등을 최우선적으로 줄이는 것은 다 같은 모양입니다.
  오늘은 새벽부터 봄을 재촉하는 비 때문에 대지가 촉촉이 젖었습니다. 서울이야 비가 와도 산뜻하기보다 오히려 청승스러운 모습입니다만, 아침에 출근하면서는 그래도 약간의 봄기운에 몸을 맡겨보려고 하였습니다. "이 비 그치면 강나루 긴 언덕에 푸르른 봄빛이 짙어오것다"고 노래한 어느 시인도 생각났습니다. 제가 사는 곳이 마포이고 사무실이 여의도이다 보니 마포대교를 건너오면서 그런 연상도 하게 된 것이지요. 그러나 실상 여의도 뿐만이 아니라 서울 시내를 관통하는 한강 어느 곳에도 그런 풍경을 떠올리게 하는 곳은 없습니다. 그저 고수부지라고 하는 황량한 벌판과 강안 남북이 모두 자동차 고속화도로라 아침이고 낮이고 길게 꼬리를 무는 자동차 행렬만 보입니다. 이게 이 시대 도시에 사는 우리의 익숙한 모습이라 그 누구도 이 풍경에 낯설어하지 않습니다만, 하긴 제가 사는 세들어 사는 아파트만 해도 남들은 전망 좋다고 하지만 그저 산꼭대기까지 쳐올라간 고층 아파트 숲과 시멘트로 이루어진 지붕들만 보이는 것이 무어 볼 만한 풍경이겠습니까? 오히려 살풍경한 모습이지요. 나무를 거의 볼 수 없다는 것이 더욱 저를 숨 막히게 합니다.
  서울은 정말 단 하루만이라도 탈출하고 싶은 그런 도시지요. 몇년 전 차례로 돌아본 미국과 영국의 대도시들과 비교해도 같은 도시면서도 서울은 정말 기형적인 모습이라는 생각입니다. 그래도 어느덧 이 속에서 산 것이 얼추 18년이 다 되어갑니다. 가끔씩 돌이켜보면 참 기가 막히다는 생각입니다. 강원도 산골에서 태어나 그래도 앞동산 뒷동산과 개울을 벗삼아 뛰놀던 제가 어찌어찌하여 도시로 나오게 되었는지를 돌아보면, 또 왔다가 돌아가지를 못하고 여기서 대도시의 인구폭발에 한몫을 하면서 살게 됐는지 말입니다. 제가 태어나고 자란 시기가 이 나라의 공업적 발전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던 때라는 걸 생각해보면 어쩌면 당연한 결과이고 또 소위 그래도 성공한(?) 삶이라고 하겠지요. 왜냐하면 제 살던 시골에서 당시 우리 부모들의 머릿속에는 모두 시골을 떠나 도시에 사는 것을 성공이라고 생각했었으니까요. 그 결과 모두들, 정말 소수를 빼고는 다 이 서울에 와서, 하다못해 인천과 부천에라도 자리를 잡게 된 것이지요. 몇년 전 시골 제 다닌 중학교에서 총동창회를 한다고 하여 정말 오랫만에 내려가 봤더니 고향을 지키는 이는 손가락을 꼽을 정도고 모두 도회지에서 맘 먹고 내려왔더군요. 이걸 모두들 당연시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긴 시골서 어쩌자는 건지 누구도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니까, 도시에 직업과 돈과 편안함이 있으니까 다들 그런 줄 알고 사는 것이겠지요.
  모임에서 라다크에 대한 다큐멘타리 비디오 테이프를 본 것은 생각지 못한 큰 기쁨이었습니다. 그 테이프를 통해 소위 산업화로의 발전이란 것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공동체를 해체하는가를 생생하게 본 것이 제 생각을 정리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산업혁명 이후 인류사회가 추구해온 물질문명이 오늘날 어떤 모습으로 우리를 파괴하는지 단적으로 보여주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또한 지난 2백년 동안 우리 생활을 지배해온 이러한 세계관에 대해서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해서 사실 혼란스럽고 또 고통스럽게 한 시간이기도 했었습니다. 라다크를 보면서 현재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이러한 주류의 삶의 기반에 대해서 송두리째 부정해야 하는 입장에 선다면 과연 그것이 가능한 삶의 모습으로 구체화 되겠는가 고민도 많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쩌면 이것은 종교적인 자세로 대처하지 않는다면 결국 머리로 이해하는 것밖에 더 되겠는가 하는 결론에 이르기도 했습니다. 주류의 물결을 돌려놓을 만한 대안이 별반 눈에 띄지 않으니까요. 그리고 저의 경우에 한정해서 이번 모임에서 내내 제 머리를 떠나지 않았던 것은 도시에서의 삶(두레적인 삶의 원형이 파괴된 것을 말합니다)에 대한 비판이 결국 감상적 도시탈출 욕구로만 화한다면 이것 또한 해결책이 아닐진대 그렇다고 현재의 삶을 이루는 그 기반(어찌되었든 현재 경험적으로 익숙한)을 어찌해야 할 것인가, 해결책은 잘 보이지 않고 또 함께 하는 가족의 각각의 가치관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등등 평소에도 늘 하는 고민이었지만 모임에서 더욱 구체적으로 다가오더군요.
  저는 이번 공생농두레 모임이 단순히 귀농을 준비하는 젊은 사람들을 훈련시키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느끼는 바야 사람마다 다 다르겠지만 저는 이 모임이 세계관을 바꾸는 작업이라고 봤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이 "농촌의 현재 농민에게서 미래를 볼 수 없다. 도시의 젊은이들에게서 앞으로 우리나라 농촌의 미래를 구하겠다"는 말씀을 하실 때 앞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너무도 많겠다는 두려움에 싸였습니다. 저의 경우를 예로 들면 저는 우선 준비되지 않은 사람입니다. 농사 기술도 하나 아는 게 없을 뿐만 아니라 육체적 농사 경험도 없는 저 같은 사람이 어찌 농촌에 가서 농사로 생계를 이을 수 있겠는가 하는 두려움 말입니다. 선생님은 내려와서 직접 부딪치면 다 해결된다고 하셨지만 참으로 그렇게 되기까지의 과정이 쉽지만은 않으니라 상상됩니다. 이런저런 두려움을 떨치고 농촌으로 내려간다고 했을 때 이것을 두고 저는 거의 종교적 신념이 없으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혼자 내려가 보았자 두레가 되지 않을 것이 뻔하니 결국 뜻이 맞는 사람끼리 모여서 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가장 우선되는 대안이 바로 창녕의 공생농두레 현장으로 가는 것이겠지요. 그리고 단순히 농사를 짓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우리 먹거리와 우리 땅을 살려 모두가 잘 살자는 데 우리 두레농업의 근본 뜻이 있으니 이것은 지금의 현실에서 본다면 비주류(?) 운동이지요. 예나 지금이나 주류적 흐름을 떠나 본질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들에게는 고통과 좌절이 따르지 않습니까. 어찌 생각해보면 독립군 같다고나 할까요?
  지난 늦가을에 읽었던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가 저를 이번 공생농두레 모임에 가게 하는 데 힘을 준 책입니다. 제가 읽고나서 마누라도 다 읽었는데 우리는 서로 감동을 받았지만 한편으론 그것이 너무 먼 남의 일로만 생각되는 면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삶, 즉 자연 속에서 자연스럽게 어울려 사는 그런 삶이 우리의 삶 속으로 들어와 구체화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그런 고민을 하던 중에 마침 이번 두레 모임을 알게 되었고 또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왜 좀더 일찍 눈을 뜨지 못했던가, 자책도 많이 했습니다. 언제나 나와 우리 가족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삶이었고 그것 또한 완전하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지금 하고 있는 이런저런 고민도 결국 고민으로만 끝나고 실천적인 태도를 보여주지 못하는 먹물의 자기위선이 아닌가 의심도 해봅니다. 아직도 구체적 결심과 그것을 실천으로 옮기기에는 부족한 것이 많습니다. 그래서 서른 일곱살 나이에 어찌보면 스무살에 했어야 할 고민을 안고 골몰하는 제 자신이, 또한 이 땅에서의 환경이 안타깝고 쓰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기계적인 삶에 함몰되어 회의도 없이 전망도 없이, 둘러싸고 있는 환경에 대해 고민도 없이 살아가기에는 존재의 자기 회의가 너무 깊어 보다 근원적인 삶의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또 해결책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그 과정 속에 나의 진실이 담겨있는 것 아닌가 자위해봅니다. 삶은 늘 과정 속에 있는 것이기에 감히 끝은 없다고 봅니다.
  마지막으로 모임을 통해 평소에 존경해 마지않던 선생님을 뵙고 또 주장하시는 바에 대해 그곳에 모였던 사람들과 생각을 나눌 수 있었던 시간이 무엇보다도 유익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곳에 모였던 우리들의 삶이 각자 어떤 경로를 따라가든지 이번 모임이 우리에게 큰 화두를 가슴에 던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앞으로 계속 선생님과 또 공생농두레, 한살림 식구들을 서로 만나고 또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시간나는 대로 틈틈이 두레농장에 내려가도록 하겠습니다. 한가지 바람은 마지막 날 오셔서 새로운 농사 경험담을 들려주셨던 이영문 선생의 태평농법이 아마 거기 모였던 우리들에게는 농사에 대한 현실적 대안으로 다가온 것 같은 데 직접 그 농사짓는 현장을 가보고 또 실습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으면 합니다.
  두서없는 글을 이만 줄일까 합니다. 함께 하시는 두레 일꾼 모든 분들께도 더불어 안부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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