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이야기

농사이야기

지나간 이야기들-네번째

  • 길벗
  • 2004-10-02 09:4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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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회사 생활 하면서 시골에 관한 기사가 나오면 틈틈이 스크랩을 해두곤 했습니다.
또 농촌과 농사에 관련된 단행본이 나오면 꼭 사보곤 했습니다. 늘 언젠가는 농사를 지러 시골로
내려간다고 주절거리면서 말입니다. 내가 생각해도 참 특이한 것은 남들은 서울서 돈 많이 벌어
여유를 가지고 소위 전원생활하러 간다고 생각하는 것이 다반사였는데 저는 이상하게도 농사를
짓고 싶었습니다.
이런 얘기를 자주 하니까 우리 어머님은 제가 전생에 농사와 무슨 연이 있는가 농담을
하실 만큼 회사 생활에 몰두하면 할수록 마음 한 구석에는 귀농에 대한 염원이 쌓여만 갔습니다.

그러나 소심한 소시민이고 특출난 재주가 없는 위인이기에 실행을 과연 할 수 있을지는
저 자신도 자신이 없었습니다. 다만 가야된다면 나이 더 들기 전에는 가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은 들었습니다.

왜 이 산업화, 도시화된 사회에 살면서 이미 내팽개쳐진 1차 산업인 농사를 꿈꾸며 또 다들
불나방처럼 계속 도시로만 몰리는 이 세태 속에서 왜 제 속에는 시대에 역행하려는 마음이 도사리고
있을까요. 그냥 단순한 낭만적 발상과 애정인지, 도시 생활에 대한 염증인지, 현실에 대한
도피적 생각인지 사실은 고민도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여러 의문에 대한 정확한 대답보다는 우선 저 자신이 촌놈이라는 사실이 중요했다고
봅니다. 즉 서울로 올라온 지 10년이 훨씬 지나 어엿한 사회인이 되었고 또 가족들 몸 뉘일 작은 공간도
있었지만 여전히 저는 서울 생활에 어떠한 친근감도 갖질 못했습니다. 또 흔히들 말하는 직장에서의
소위 출세라는 것에 대해서도 관심을 두지 못한 채 뭔가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한편으로는 90년대 초반부터 <녹색평론>이라는 책을 정기 구독하고 있었는데 그것도 도시를
벗어나고픈 생각에 일조를 단단히 했으리라 짐작합니다. 이 잡지를 알게 된 것은 어느 날인가 '민음사'에
놀러 갔다가 당시 이영준 주간으로부터 소개를 받았는데 그 때가 아마 창간 무렵이었던 것 같습니다.
대기업에 다니는 월급쟁이가 업무와 전혀 관련이 없는 이런 환경, 생태 잡지를 정기 구독하는 것을
이해 못하시는 분은 아마 결코 시골로 내려가는 일은 없으리라 봅니다. 지금도 여전히 <녹색평론>은
우리 집 여러 정기구독 잡지 중 하나입니다.

이러구러 서울 생활은 계속되고 있었고 그러다가 2년 반 동안 잠시 고양시 외곽에서 소위 농가주택
에 입주해 살아보기도 했습니다. 이유는 순전히 단 하나, 텃밭 가꾸기라도 하며 농사 체험을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 집은 겨울이면 온 창문과 방문에 비닐을 덧대야 하고 여름 장마철에는 천장 곳곳이
비가 샐 만큼 아주 허름한 옛날 집이었습니다. 그리고 교통이 아주 불편해 제 차를 가지고도
서울 회사까지 1시간 이상이 걸리는 먼 곳이었지만 그래도 행복을 맛보던 시간들이었습니다.

그러다 97년 연말에 IMF사태가 나고 온 나라가 벌집 쑤신 듯 난리였습니다. 미안한 얘기지만
개인적으로는 별다른 감각이 없었습니다. 그때까지 우리나라 경제가 너무 좋았기(?) 때문에
나쁠 때도 있을 거라는 생각, 산도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다만 시스템에 문제가 좀 있고 그리고 그것을 운용하는 사람들의 의식과 문화가 더 큰 문제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나 같이 한유한 생각을 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98년 2월 그러니까 IMF사태가 난 바로 그 이듬 해에 마침 기회가 있어서 그동안 바라왔던 귀농학교에
2박 3일간 입소를 하였습니다. 회사에 휴가를 내고 간 것입니다. 대구한살림과 녹색평론사가 주관이
되어 연 것으로 '공생농두레 귀농학교 제1기'가 바로 그것입니다. 짧은 기간에 많은 것을 보고 듣고
하였습니다. 그때 교육에 다녀온 뒤의 소감이 그 해 <녹색평론> 5.6월 호(통권 40호)에 실렸습니다.
그 글을 다섯번째 이야기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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