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이야기

농사이야기

지나간 이야기들-세번째

  • 길벗
  • 2004-10-01 08:0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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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 농촌으로의 회귀를 꿈꾸었을까. 대개의 사람들은 저를 만날 때 묻곤합니다. 언제부터 그런
발칙한 생각을 품게 되었느냐고. 글쎄, 그건 딱 언제라고 정확하게 말할 수 없는 저 먼 곳에서의
부름이었다고 대답해야 할까요.

1991년에 아마도 최초의 바람이 났었던 것 같습니다. 진원지는 우연히 본 <대지의 노래 바람의 노래>
라는 책이었는데 홋까이도에서 공동체적 목장 '아리스 팜'을 운영하는 후지카도 씨의 이야기였습니다.
그 책을 읽고 후지카도 씨와 팩스로 두 번인가 서신도 주고 받았을 정도로 관심이 갔습니다.
아직 방문은 못했는데 기회가 되면 꼭 가보고 싶은 곳 중의 한 곳입니다.

그 무렵 우연히 월간지 <샘이 깊은 물>에 소개된 오재길 선생님의 삶에 대한 기사를 보고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일찍이 귀농을 하였고(1961년) 70년대 초부터 당시로는 생소한 유기농업을
그 누구보다 일찍 깨우쳐 그때부터 실천해오신 분인데 귀농하실 때의 나이가 마흔이었습니다.
그 기사를 보고 많은 위안을 받게 되었고 언젠가는 나도 이 분처럼 귀농할 날이 있겠지 막연히
희망을 품게 되었습니다.

또 지면을 통해서 만난 분은 지금도 지리산 쌍계사 인근에서 양봉과 사슴을 기르고 계신
<쇠점터 농장>의 정재건 선생님이었습니다. 당시 <한국인>이라는 잡지에 소개된 것으로 기억되는데
최고학부와 대학원까지 마친 분인데 1972년 경에 지리산 자락으로 귀농하여서 지금까지 사시는
분이었습니다.

이런 기사에 가슴이 뛰고 흥분이 된다는 것 자체가 이미 유전자적 소질이 있는 것이겠지요?
결국 1992년 가을에 저는 정선에서 농사짓는 중학교 동창을 만나러 갔습니다. 목적은 그 친구 동네로
귀농을 해볼까 하고 현지 답사를 간 것이지요. 그 동창은 중학교만 졸업하고 부모님 밑에서 그때까지
그곳에서 계속 농사를 지어오던 터였습니다. 답사에 불과한 며칠 여행이었지만 회사의 몇몇
동료들에게는 술 기운에 이미 호언을 한 터였습니다. 농사지러 간다고.

두 번을 다녀온 뒤에 안사람에게 얘기를 하였습니다. 그리곤 당시 유치원을 다니던 아이들을
데리고 안사람과 다시한번 정선엘 갔습니다. 길도 험한 그곳은 분교가 강 건너에 하나 있었고
마을사람들은 이미 거의 다 이농으로 떠나버린 아주 황량한 강원도 오지 중의 오지 였습니다.
안사람은 아무 말도 못하고 그저 눈물만 흘렸습니다. 그리고 이런 곳에서 어떻게 사느냐고
한 마디 하더군요.

그 뒤 손위 처남이 저랑 한번 더 그곳엘 다녀왔습니다. 처남도 아주 난감한 표정으로 별 말을
못했습니다. 그때 그곳의 땅값은 아주 싸서 서울의 제 조그만 빌라를 처분하면 큰 땅을 장만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이 문제가 아니라 논은 한 평도 없이 오로지 밭농사만으로 먹고
살아야 하는 강원도 오지 골짜기에서 무슨 농사를 어떻게 지어서 먹고 살 것이냐 하는 것이
큰 고민이었는데 그 중학교 동창은 자기 따라 고추와 감자농사를 지으면 된다고 했습니다.
그 친구는 제가 그곳으로 내려오기를 무척 바랐었는데 이유는 자기 고향에서 어릴 적부터
함께 지내던 친구들이 이농 바람으로 모두 대처로 떠나버려 너무나 외로웠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내의 결사적인 반대로 끝내는 못내려갔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조금 아쉽기도 합니다. 어쨌든
그 해 가을의 정선 붐은 해프닝으로 막을 내렸고 이후 몇년 동안 귀농이란 단어는 제 머리에서
잠시 자리를 비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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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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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아빠 2009-04-25
    귀농도 유전인자가 있나 봅니다. 정확히 언제부터 귀농하려고 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전 지금 많은 걸음을 옮기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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