껍질째 먹는 사과 - 길벗사과농원 방문을 환영합니다.



제목: 늦은 공지 그리고 껍질째 먹는 사과...
이름: 길벗


등록일: 2020-09-18 10:25
조회수: 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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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저병에 갈반병에 올해 사과농사는 대흉년입니다.


병든 사과를 일일이 다 따내고 있습니다.

진즉에 소식을 올렸어야 하는데 그동안 울화를 삭히느라 이곳에 통 글을 쓸
마음을 잡지 못하다 이제사 뒤늦은 사과판매 어렵다는 공지를 올립니다.

저는 20년간 사과농사를 지어오면서 일찍이 <껍질째 먹는 사과>를 표방해왔고
이는 귀농 전 유기농에 대한 저의 소망을 그나마 현실적으로 어려운 사과 유기농
농사에 대한 변명 혹은 대안으로 여겨 그렇게 농사를 지어 왔습니다.

다행히 그당시에 '저농약'이라는 인증이 생겨(지금은 없어졌습니다) 저의 이러한
생각을 뒷받침해주었고 이는 수확 한 달 전에 마지막 농약방제를 하는 것을
기준으로 하는 것이었습니다.

대개 농약의 잔류기간이 짧으면 1주일, 길면 보름인데 물론 훨씬 더 긴
방제약도 있습니다만 수확이 가까워오면 잔류기간이 짧은 농약으로 방제합니다.
어쨌든 저는 그래서 이제껏 대개 8월 중순 경에 마지막 방제를 해왔고
추석이 빠르고 늦은 것을 감안해 며칠 조정을 하는 정도였습니다.

올해도 당연히 그렇게 했으나 올해는 긴 장마에 심지어 9월 초순까지도
계속 비가 내려 예년 같으면 대개 전체 수확량의 20% 정도의 '탄저병'이 있었으나
올해는 반대로 90% 가까이 탄저병에 노출되어 결국 수확을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결과적으로 누군가 올해 같은 기상에는 해 비칠 때마다, 삼일마다 약을 쳤어야한다고
하는데 저로서는 '껍질째 먹는 사과'를 저의 농사 모토로 내세우고 있고
특히 저는 전량 직거래로만 사과를 판매해왔기 때문에 그렇게는 할 수 없습니다.

아무튼 병든 사과도 따내야 하기 때문에 아무런 경제적 이득이 없지만 며칠째
인부들을 써서 사과를 따내고 있습니다. 약 10%에도 못미치는 그나마 정상과도
그저 사과식초와 올해 새로 시작하는 애플사이더(프랑스에서는 애플시드르)용으로
쓰고 말 계획입니다.

사과를 재배하면서 출하를 시작하고 난 이후 이렇게 추석대목 선물용 사과를
단 한 박스도 출하해보지 못하는 것은 올해 처음입니다. 물론 단골분들께서 그저
집에서 먹으려고 하니 흠 있는 사과라도 몇 박스 보내달라고 하시는 분들이 계신데
그마저도 보내기 송구스러워 어려울 것 같습니다.

다행히 10월 말 ~11월 초 수확하는 부사 사과는 괜찮습니다.
올해 코로나에 긴 장마에 저 뿐만이 아니라 모든 분들이 어려운 시기라
내놓고 불평을 하기도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올해 집 앞에 짓게 되는 사과즙 가공공장은 그간 장마와 비에 손을 놓고 있다가
이번 주 초부터 터닦기 작업부터 시작해 오늘부터는 드디어 건물 기초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계획보다 많이 늦어져서 이도 또한 걱정입니다. 추위가 닥치기 전에
완공되어 가능한 빠른 시일에 공장 가동을 해야 하는데 결국 모든 것은 다
날씨(자연)에 달렸습니다.

올해 추석사과 농사를 못지어 이곳에 오시는 많은 길벗 님들에게 죄송하고
선물용 주문과 햇사과맛을 못뵈드려 송구합니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한 가지 결심한 것은 이제 내년부터는 적어도 홍로만큼은
'무농약'으로 농사를 짓고자 하는 것입니다.

늘 무농약 또는 유기농 농사에 대한 염원이 있었고 실제로 이를 위해 교육과 견학도
여러번 다녀왔으나 지난 20년간 겁이 나서 실천을 못해 왔습니다. 겁이 나는 이유는
무농약을 하다가 나무가 죽는 일이 다반사이기 때문입니다.

일년생 채소농사와 달리 수확까지 몇 년이 걸리는 과수농사라 자칫 폐농까지 가는
경우를 보았기 때문에 그간 멈칫했는데 이제는 무농약 사과농사를 시작해야 하는
때인 것 같습니다. 그동안 보고 배운 지식이 있으니 어렵지는 않으나 무농약 농사이든
관행농사이든 결국은 자연의 섭리에 따라 결과는 정해지게 되어 있습니다.

많은 것을 돌아보게 하는 올 한 해인 것 같습니다.
나이도 농사이력도 또 새로 시작하는 일(사과즙, 애플사이더)도 모두 다시한번
돌아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난 만 3년간 해왔던 유정란 농사도 이번에 그만두기로
하였습니다.

이유는 집 앞에 식품제조업(사과즙 가공)을 하는데 같은 골짜기 안에 비록 규모는
작다고 하더라고 축사가 있는 것이 제 마음에 허용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우리 길벗유정란을 꾸준히 주문해주신 여러 길벗 님들이 너무 안타까워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결정입니다. 전국에 몇몇 유정란 하는 곳을 돌아다녀 보았는데
저희 농장처럼 넓은 방목장에 넓은 계사 공간을 두고 이렇게 소규모로 하는 곳은
단 한군데도 없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모든 것이 다 자본과 투입과 산출을 따지는 현시대에 따라 농부도
살아야하니 그야말로 50년 전 그런 농촌의 풍경과 일은 이제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그나마 그런 어릴적 외갓집 농촌 풍경과 일상을 늘 꿈꾸는 저로서는 어쩌면
시대에 뒤떨어진 이상한 사람일지도 모릅니다. 저도 조그만 이 농사를 지으면서
수없이 갈등하고 타협하고 하는데 큰 농사를 짓는 분들은 오죽할까 생각도 듭니다.

길벗 님들, 올 추석에 길벗사과 선물과 맛을 못보여드리게 되어서
다시한번 죄송한 말씀을 드리고 그러나 부사 사과 때 많이 주문해주십시오.

늘 감사드리면서 이만 맺습니다.

       
이정은
홍로사과도 없고 유정란도 접는다고하시니 굉장히 섭섭하네요.
길종각씨는 더 마음이 아프시겠어요. 병나지마시고 잘 견디세요.
2020-09-23
22:41:09

[삭제]
길벗
늘 걱정해주시는 정은 씨, 매년 홍로 선물용 10박스씩 주문하셨는데 못보내드려
미안합니다. 계란도 이제는 더 못보내드리게 되었네요. 이제껏 농사지어 오면서
나이를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올해는 내 나이를 생각해봅니다.
꼭 10년만 더 하고 은퇴해야지 계획해봅니다. 그 사이 민이가 와서 이 농사를 같이 하다가
나중엔 저 혼자 스스로 해나가기를 염원해보면서 말입니다. 정은 씨도 평안하시길 빕니다.
추석 잘 쇠시고 해가 가기 전에 올해는 호재 형과 함께 망년회 꼭 합시다. ^^
2020-09-26
20:3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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